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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최근 군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의 사망 사건이 잇따르자 피해자들에게 성폭력 대응 요령 등이 담긴 전용 수첩을 지급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취지이지만, 피해자를 특정해 수첩을 나눠주면 ‘낙인 효과’에 따른 2차 가해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방부는 18일 ‘민관군 합동위원회 제4분과 7차 회의’에서 군내 성폭력 사건 개선방안으로 피해자 수첩 마련을 제안했다. 피해자 수첩에는 형사·징계 관련 절차를 비롯해 단계별 권리와 행동 요령, 2차 가해 대처 방법 등이 담긴다. 피해자에게 용기와 안정감을 줄 수 있는 문구와 피해자 스스로 적을 수 있는 메모 기능도 첨부하겠다고 한다.

국방부는 피해자 수첩의 필요성을 산부인과 병원에서 임산부에게 제공하는 ‘산모 수첩’에 빗대어 설명했다. 국방부는 “우리나라 산부인과 실무에서는 임산부가 알아야 하는 유익한 모든 정보를 깔끔하게 들고 다니기 편한 예쁜 수첩 형태로 제공한다. 수첩을 통해 산모에게 믿음과 편리함을 주고 있다”며 “성범죄 피해자에게도 피해자 수첩을 만들어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국방부 청사 전경. 김창길 기자

국방부 청사 전경. 김창길 기자

전문가들은 피해자 수첩이 오히려 낙인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사무실에서 프린트 출력만 해도 누가 했는지 특정이 되는 군에서 피해자 수첩을 받았다는 건 그 자체로 낙인”이라며 “피해자 보호는커녕 오히려 피해자 불안감을 키우는 안이한 대책”이라고 비판했다.

피해자로 하여금 자책감을 갖게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방혜린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은 “피해자가 수첩을 받고 느끼는 감정은 죄책감”이라며 “수첩에서 명시한 행동 요령을 따르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을 겪게 됐다는 왜곡된 인식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를 특정한 수첩이 아니라 전 군을 상대로 직급에 따른 역할 매뉴얼을 지급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성 폭력 사건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나온 안건으로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사안”이라며 “피해자에게 피해를 기록하라는 게 아니라 피해가 발생했을 때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알려주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또 “피해자 수첩은 확정된 대책이 아니다”라며 “민관군 합동위원회 전체 회의 의결과 권고, 국방부 검토 과정을 거쳐야 정책으로 채택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논의가 진행된 민관군 합동위원회는 공군 중사 성추행 사망 사건 이후 지난 6월 장병 인권과 병영 전반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근본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출범한 기구다.


반기웅 기자 ban@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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