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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의 성추행과 군의 2차 가해로 이예람 중사가 사망한 지난 5월, 공군에서 비슷한 나이의 하사가 성추행을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확인됐다. 군인권센터는 공군이 강제추행 사실을 조사하고도 유족들에게 숨기고 가해자를 주거침입으로만 기소하려 하는 등 성추행 사실을 감추려 했다고 주장했다.

군인권센터는 15일 마포구 센터 건물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군은 이예람 중사 사망 이후 재발 방지를 약속했으나 또 다른 성폭력 피해자 사망 사건을 엉망진창으로 처리하고 있었다”며 “군이 가해자의 자백을 받고도 의도적으로 성폭력 사건을 묻으려 했다”고 밝혔다.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15일 열린 ‘공군 성추행 피해 여군 사망 사건 스트레스로 자살로 둔갑’ 기자회견에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발언하고 있다. 군인권센터는 최근 ‘공군 이 중사 사망 사건’이 일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유사한 사건이 발생한 것에 대해 군의 진실 규명과 처벌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한수빈 기자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15일 열린 ‘공군 성추행 피해 여군 사망 사건 스트레스로 자살로 둔갑’ 기자회견에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발언하고 있다. 군인권센터는 최근 ‘공군 이 중사 사망 사건’이 일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유사한 사건이 발생한 것에 대해 군의 진실 규명과 처벌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한수빈 기자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공군 8전투비행단에서 하사로 일하던 피해자 A씨는 5월11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씨의 시신을 발견한 건 부서 상관 이모 준위였다. 이 준위는 A씨가 출근시간 30분 전에도 부대에 나타나지 않자 7시57분쯤 A씨 집에 직접 찾아갔다. 인기척이 들리지 않자 이 준위는 8시45분쯤 대대 주임원사와 함께 방범창을 뜯고 집으로 들어가 A씨 시신을 발견했다.

8비행단 군사경찰은 이 준위가 경찰을 부르지 않고 직접 A씨 집으로 들어간 뒤 물건을 뒤진 점을 수상하게 여겨 5월21일 이 준위를 불러 심문했다. 수사 결과 이 준위는 A씨가 숨지기 전 7차례 이상 집에 찾아가고 수시로 업무와 관계없는 연락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준위는 3월과 4월 두 차례 A씨의 볼을 잡아당겼으며, A씨가 “얼굴 만지는 거 싫다”며 명확하게 거부 의사를 표시했다고 자백했다.

이에 대해 이 준위는 군경 조사에서 “성적인 접촉은 아니었다”고 진술했는데, 이 진술은 6월2일 거짓말탐지검사에서 거짓으로 판정됐다. 군경은 A씨가 사망하기 이틀 전 이 준위가 찾아갔고, A씨와 통화한 기록만 삭제한 사실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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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군경은 변사사건 수사 결과에 강제추행 사실을 반영하지 않았다. 조사 보고서에 적힌 사망 원인은 ‘보직 변경으로 인한 업무 과다’와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이 전부였다. 이 준위 역시 공동주거침입, 주거수색, 공동재물손괴 등의 혐의로만 기소됐다.

유가족들은 의구심을 품고 6월17일 이 준위를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으로 수사해달라고 요청했다. 유족들이 수사기록 정보공개를 청구하는 등 압박을 넣자 공군본부 보통검찰부는 8월3일에서야 돌연 가해자를 ‘군인 등 강제추행’ 혐의로 입건했다고 밝혔다. 유가족은 지난달 14일 군 검찰이 이 준위를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한 뒤 공소장을 확인하고서야 딸의 성추행 피해 사실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군인권센터는 군 상부가 A씨의 강제추행 피해 사실을 알고도 은폐했다고 주장했다. A씨가 사망한 시점이 군이 이중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군의 성폭력 사건을 전수조사하겠다고 밝힌 때라 A씨의 성추행 피해 사실 역시 인지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군인권센터는 “당시 분위기를 생각하면 사건이 상급 부대에 보고되지 않았을 가능성은 전무하다”며 “국민의 관심이 군 성폭력 이슈에서 멀어질 때쯤 사망사건과 강제추행이 연결되어 있는 사건임이 티가 나지 않게 별도 기소한 것”이라고 했다.

군인권센터는 “군에서 세상을 떠난 피해자의 명예를 되찾는 일은 왜 항상 유가족의 몫이 되어야 하냐”면서 “제대로 된 사건의 진실 규명을 통해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망의 인과관계를 살펴 가해자를 처벌하고, 사건 은폐와 축소를 모의해 온 수사 관련자 및 지휘계통에 대한 처벌 또한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홍근 기자 redroot@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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