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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회사가 젊은 여직원에게 허드렛일을 시킵니다. 설거지도, 음식물 쓰레기 치우는 일도 여직원이 하게 합니다.”

“사장님이 ‘연애할 생각이 없냐’, ‘여자는 나이 먹으면 퇴물 취급 당한다’는 황당한 말을 했습니다. 업무를 잘했다고 칭찬하면서 제 머리카락을 만졌습니다.”

직장갑질119가 3·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 직장인들로부터 제보 받은 갑질 사례를 6일 공개했다. 20대 대선 국면에서 젠더 이슈는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방식으로 다뤄졌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발언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직장갑질119에 제보된 내용을 보면 여성이라는 이유로 외모를 평가받고 허드렛일을 요구받으며, 임신한 후로는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는 등 여전히 성차별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단체가 지난 1∼2월 받은 제보는 총 336건으로, 이 중 직장 내 성희롱·성추행 제보만 22건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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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 노동자는 “작은 회사이다 보니 대표와 둘이 있을 때가 많은데 지나가면서 잘못 건드린 것처럼 몸을 만지고, 제 컴퓨터를 들여다보는 척하면서 몸을 밀착시키거나 어깨를 감싸고 손을 슬쩍 잡는다”고 했다. 외모 비하도 있다. 여성 노동자를 가리켜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팔다리가 짧다’, ‘몸매가 통통하다’, ‘우리 회사는 앞으로 얼굴 보고 (사람을) 뽑아야겠다’ 등의 차별적 발언이 직장에서 나왔다고 했다. 여성 노동자에게만 커피와 간식 준비, 회의 장소 정리하기, 설거지 등을 시켰다는 사례도 있었다.

여성 노동자들이 직장에서 성과를 올려도 임신을 하는 순간 벽에 부딪힌다. 한 여성 노동자는 “회사에서 수출 향상에 큰 성과를 냈다며 최우수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임신과 육아휴직을 하게 되자 모든 게 달라졌다”고 했다. 그는 “임신을 이유로 인사 평가 점수를 낮게 주고 진급을 누락시켰다”며 “정신적 스트레스와 과로로 병원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육아휴직 후 기존에 하던 업무와 다른 업무를 맡게 되거나, 관련성이 없는 부서로 배치받는 경우도 있다. 상사로부터 지속적으로 나가라는 압박을 받고, 지나치게 많은 업무량을 부여해 괴롭힌 사례도 있었다.

성차별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직장갑질119가 공공상생연대기금과 함께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실직 경험 여부를 물은 조사에서 여성 응답자의 21.8%가 ‘있다’고 답변했다. 이는 남성(15.4%)보다 많은 것이다. 소득이 줄었다는 답변도 여성이 36.5%로 남성(23.4%)보다 13%포인트 높았다.

5일 오후 서울 보신각 앞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7회 한국 여성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연합뉴스

5일 오후 서울 보신각 앞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7회 한국 여성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연합뉴스

직장에서 여성 노동자에 대한 성추행이나 성희롱·괴롭힘, 육아휴직에 따른 불이익은 법으로 금지돼 있지만 현실적으로 신고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장종수 노무사는 “2018년을 기점으로 여성 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처우와 노동권을 개선하려는 입법이 계속되고 있으나 현장에서의 차별은 여전하다”며 “정부의 획기적인 특별대책을 통해 직장 내 성차별을 근절해야 한다”고 했다.

전날 서울 도심에서는 3·8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열렸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제37회 한국여성대회를 열고 선언문을 통해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뿌리 깊은 성차별적 사회 구조는 여전히 여성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정책에 젠더 관점이 반영될 수 있도록 성평등 정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어 “성평등은 생물학적 성별인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 모두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며 “3월9일 소수자 혐오를 팔아 정치적 기득권을 유지하는 남성 독점 기득권 정치를 심판할 것”이라고 했다.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은 ‘이렇게 된 이상 페미니즘으로 간다’란 주제로 기자회견을,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발언대회를 열었다.



이혜리 기자 lhr@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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