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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경향신문-국제앰네스티 공동 기획 ‘그냥 결혼이야’

② 한국·대만·일본 당사자들이 말하는 ‘성소수자, 혼인의 자유’

대만, 일본, 한국의 다른 정치 상황은 성소수자 당사자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2019년 동성혼을 합법화한 대만은 지난 5월 동성 커플의 입양권도 확대했다. 아이를 입양할 수 있게 된 대만 커플은 “인생을 계획할 수 있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일본 성소수자 권리는 2015년 도쿄 시부야구에서 동성 커플에게 사실혼 관계 증명서를 발급하는 조례를 통과시키면서 전환점을 맞았고 지자체에 파트너십 제도가 확산되면서 현재 70% 이상 인구가 파트너십 제도의 영향을 받고 있다. 지난해 3월 최초로 삿포로 지방재판소(지방법원)에서 ‘동성 커플에게 혼인의 법적 효과를 전혀 인정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한 후 판결도 잇따르고 있다.

소성욱씨(왼쪽)와 김용민씨가 지난 9월25일 서울 마포구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사무실에서 손을 포개 포즈를 취했다. 한수빈 기자

소성욱씨(왼쪽)와 김용민씨가 지난 9월25일 서울 마포구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사무실에서 손을 포개 포즈를 취했다. 한수빈 기자

한국은 지난 2월 동성 커플의 사회보장제도상 권리를 법원이 처음으로 인정했다. 동성 커플에게도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온 것이다. 레즈비언 커플이 벨기에 난임 병원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하고 이를 공개한 사례도 나왔다.

이들의 삶에 이러한 법과 제도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성소수자 커플들을 직접 인터뷰해 들어봤다. 대만과 일본 커플은 e메일로 인터뷰를 했고 한국의 커플들은 지난 9월 25일 만나서 인터뷰했다.

대만 커플 ‘장쓰샹·캉팅웨이’

“인생을 계획할 수 있고 삶이 더 개방됐다”

- 장쓰샹(39), 캉팅웨이(32)

장쓰샹(39)과 캉팅웨이(32)는 대만 타이페이 허우산피역 근처 베이커리에서 만났다. 말레이시아인 장쓰샹이 2013년 박사 학위 과정을 밟기 위해 국립대만대학교로 왔을 때였다. 장쓰샹은 자신이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걱정했다. 대만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말레이시아로 돌아가야 할 수도 있었다. 2013년이었으니 동성 결혼에 대한 희망도 없었고 ‘국경을 초월한 관계’를 마음대로 시작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캉팅웨이는 거의 반년을 매장에 왔고 장쓰샹은 “서서히 이 관계에 마음을 열었다”고 말했다.

대만 사법원(헌법재판소)이 혼인을 ‘남녀’에 의한 것으로 제한하는 현행 민법 규정을 위헌으로 판단할지 기대가 고조되던 2016년, 퀴어 퍼레이드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날 장쓰샹은 캉팅웨이에게 물었다. “내년에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면 결혼해줄래?” 결혼이 자신의 인생에서 선택 사항이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 없었던 장쓰샹은 “결혼이 그토록 가까워질 수 있다고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장쓰샹(왼쪽)와 캉팅웨이 커플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대만지부 제공

장쓰샹(왼쪽)와 캉팅웨이 커플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대만지부 제공

2017년 대만 사법원은 현행 민법 규정을 위헌으로 판단하면서 2년 내에 민법을 개정할 것을 입법원(국회)에 권고했다. 두 사람은 2년 안에 결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초국적 동성 결혼’은 포함되지 않았다. 법적 관계가 아니라는 것은 인생을 계획할 수 없다는 뜻이다. 장쓰샹은 졸업한 뒤 두 나라를 왔다갔다 해야 할지 두려움이 커졌다.

상황이 반전된 건 지난 1월 행정원(행정부)이 동성결혼을 초국적 커플에게도 확대하겠다는 서한을 보내면서였다. 캉팅웨이는 “정말 기뻤다. 접수를 시작하자마자 서둘러 등록했다”고 말했다. 장쓰샹은 “드디어 우리는 법적 문제 없이 한 국가에서 평화롭게 함께 살 수 있게 됐다”며 “이러한 안정감은 내 인생을 계획하는데 큰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입양이 가능해지면서 이제 두 사람은 ‘가족 확장’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됐다. 장쓰샹은 “인생 계획의 또다른 단계”라며 “삶이 훨씬 더 개방됐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입양을 고민 중이다. 캉팅웨이는 “부모 없이 자립하기 위해 애쓰는 아이들이 많은데 가족이 없는 아이들에게 가족의 사랑을 전하고 그들과 함께 성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만은 아시아에서 성소수자 권리 보호에 맨 앞에 서 있다. 장쓰샹은 “대만은 일찍이 근대화를 시작한 이민자들의 나라로 체제에 용감하게 맞서는 사람들을 만들었다”며 “지난 수십년 간 노력한 개척자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캉팅웨이는 “생각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대만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커플 ‘올리비에 파브르·야기 도루’

“평등을 위한 투쟁은 당신만의 것이 아니다”

- 올리비에 파브르(56), 야기 도루(44)

일본 도쿄에 사는 프랑스인 올리비에 파브르(56)와 일본인인 야기 도루(44)는 20년 이상 사귀었다. 파브르는 “우리가 이성애자였고 처음 만났을 때 아이를 가졌다면 그 아이들은 이미 어른이 되었을 것이라고 농담한다”고 말했다.

일본에선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주변사람들에게 드러내지 쉽지 않다. 20년 전 처음 야기가 가족들에게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알렸을 때 어머니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지고 있다. 파브르는 “일본 미디어, 특히 뉴스에서 성소수자 이슈가 많이 언급되면서 변화가 가능했다”고 말했다. 올해 두 사람은 처음으로 가족들과 함께 새해를 보냈다.

일본 도쿄에 사는 프랑스인 올리비에 파브르(왼쪽)와 일본인 야기 도루 커플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일본지부 제공

일본 도쿄에 사는 프랑스인 올리비에 파브르(왼쪽)와 일본인 야기 도루 커플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일본지부 제공

법적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은 많은 ‘불편’이 생긴다는 뜻이다. 두 사람은 월셋집을 구할 때 두 남자에게 세를 주는 집주인을 찾는데 애를 먹었다. 파트너가 아플 경우도 걱정이다. 파브르는 “함께 나이를 먹을수록 많이 걱정하는 부분”이라며 “일본은 지진도 잦은데 우리 중 한 명이 지진으로 다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파브르는 외할머니가 일본인인 일본인 3세지만 프랑스 국적이라 함께 프랑스로 이민 가는 것도 고민했지만 일본에 남았다. 파브르는 “우리 삶 안에서 바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15년 도쿄 시부야구에서 동성 커플에게 사실혼 관계 증명서를 발급하는 조례를 통과시키면서 일본의 성소수자 인권은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기업들은 변화에 가장 빨리 적응 중이다. 2017년부터 일부 일본 은행들은 동성 커플들이 주택 담보 대출을 신청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 시작했다. 파브르는 “우리는 이때 함께 집을 샀는데 월세를 지출하는 것보다 훨씬 더 합리적이었다”고 말했다.

동성 커플을 ‘가족 할인’에 포함하는 등 동성 커플에게 서비스를 확장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일본 통신3사는 동성 파트너 증명서가 있는 지역에 거주하는 경우 가족 할인을 해준다. 항공사 JAL과 ANA는 동성 가족에게 가족 마일리지를 적용한다. 일부 보험사에서는 동성 파트너가 보험금 수령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일부 시립 병원들도 동성 파트너를 가족으로 대우하기 시작했다. 파트너가 아플 경우 검진시 옆에 있을 수 있고 의사에게 의견을 낼 수도 있다. 미약하지만 병원에서 법적 보호자 역할을 확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3월 최초로 삿포로 지방재판소(지방법원)에서 ‘동성 커플에게 혼인의 법적 효과를 전혀 인정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한 후 잇따라 법원 판결이 나왔지만 두 사람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는다. 파브르는 “불행하게도 일본에서 동성 결혼을 허용하는 법을 제정하는 것은 여전히 정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도쿄도에 동성 커플 증명서를 신청할 계획이다. 파브르는 “공식적으로 우리가 집계되고 눈에 띌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집권 자민당은 동성 결혼 합법화에 대해 부정적이지만 여론을 믿는다. 파브르는 “자신들의 투표가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면 더 많은 시민들은 투표를 달리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만의 상황은 이들에게 ‘희망적인 미래’이고 한국 상황도 중요하다. 파브르는 “서울이 승리한다면 도쿄와 일본의 사기가 진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연대 메시지를 전달했다. “평등을 위한 투쟁은 당신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더 평등한 한국을 위해 계속 싸우고 전세계에 당신과 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세요. 모든 사람은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권리가 있습니다.”

한국 커플 ‘소성욱·김용민’

“평범하게 잘 살아나가는 모습, 보여주고 싶다”

- 소성욱(32), 김용민(31)

동성 커플 소성욱씨(32)와 김용민씨(31)는 2019년 5월 결혼식을 올렸다. 법적 혼인관계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소씨는 이듬해 2월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인 김씨의 피부양자로 등록됐다. 8개월 후 두 사람이 인터뷰로 이 사실을 알리자 기사가 나간지 2시간 만에 건보공단 직원은 “단순 실수였으니 취소 처리하겠다”고 통보했다. 김씨는 “공문도 없이 전화 한 통으로 취소될 일인지 어이가 없었다”며 “가장 화가 나는 지점은 두 사람의 관계가 일순간에 취소될 수 있다 보는 관점이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2021년 2월 소송을 냈고 지난 2월 드디어 항소심에서 동성 커플에게도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동성 커플의 사회보장제도상 권리를 법원이 처음으로 인정한 판결이다.

‘정상 가족’ 중심으로 설계돼 있는 한국 사회에서 두 사람은 “사회와 제도로부터 분리된 느낌”을 받는다. 김씨는 “시도해서 안 돼야 불편을 느끼는데 시도조차 못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항소심 결과 등기를 배달받을 때도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김씨는 받을 수 없었다. 소씨가 설거지를 하던 중이라 대신 받아달라고 했던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소성욱씨(왼쪽)와 김용민씨가 지난 9월25일 서울 마포구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사무실에서 인터뷰하며 웃고 있다. 한수빈 기자

소성욱씨(왼쪽)와 김용민씨가 지난 9월25일 서울 마포구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사무실에서 인터뷰하며 웃고 있다. 한수빈 기자

그러나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은 두 사람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최근 소씨 선배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선배는 신부 친구에게도 김씨를 ‘후배 남편’이라며 자연스럽게 소개했다. 오직 ‘정치 권력’만 두 사람의 관계를 모른 척한다고 생각한다. 김씨는 “거대 양당이 민생을 말하지만 우리는 ‘정쟁 사안’일 뿐”이라며 “주요 정치 세력들은 성소수자 국민들을 ‘민’으로도 여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보기에 동성 결혼은 이제 “한 국가의 평등권의 상징”이 됐다. 김씨는 “어떤 한 집단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다른 집단도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기 어렵다”며 “여성의 권리가 보장받지 못하면 성소수자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고 거꾸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법은 최후의 보루 같지만 사람들은 법에 의해 생각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2019년 두 사람이 결혼식을 하기로 결정했을 때였다. 두 사람의 관계를 응원했던 소씨의 아버지도 결혼식에 대해서는 쉽게 환영의 뜻을 비치지 못했다. 소씨는 “아버지는 ‘한국에서 동성 부부가 결혼을 하지 못하는데 결혼식을 꼭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셔서 ‘한국에서 동성혼이 법제화되면 그때 어떻게 하실 거냐’고 다시 여쭤봤다”며 “아버지는 ‘그때는 다시 생각해봐야지’라고 답하셨다”고 말했다. 김씨는 “다른 생각을 가졌던 시민들도 법과 제도가 변하면 우리가 동등한 시민이라는 걸 더 빨리 인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가 변하는 것도 시간 문제라고 본다. 김씨는 대만 예를 들었다. 15년 전에는 동성 결혼에 대해 찬성한다는 비율이 20%였지만 지금은 과반이 넘는 결과가 나온다. 국내 한국갤럽 6월 조사 결과도 동성결혼 법제화 찬성 여론은 40%에 달했다. 2017년부터 찬성 의견은 꾸준히 늘고 있다. 그럼에도 정치인들은 여전히 ‘사회적 합의’를 거론한다. 소씨는 “‘사회적 합의’를 운운하는 정치인들의 지지율보다 동성 결혼에 찬성하는 비율이 더 높다”고 말했다.

응원하는 사람도 점점 많아진다 느낀다. 항소심 승소 직전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데 한 남성이 김씨에게 다가와 휴대폰을 내밀었다. 휴대폰 액정에는 ‘두분 소식 잘 보고 있다. 응원하고 있다’는 메모장이 띄워져 있었다. 김씨는 “드러내지 않아도 우리를 지지해주는 분들이 있구나 감동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꿈은 ‘행복한 할아버지 부부가 되는 것’이다. 소씨는 “10대 땐 성인이 되기 전에 내 삶은 끝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30대인 지금 옆에 있는 존재 덕분에 삶이 충만해졌다”고 말했다. 김씨는 “청소년 단체가 조사한 결과를 보니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나이든 성소수자들을 만나보고 싶어했다”며 “평범하게 잘 살아나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라니 엄마’ 된 한국 커플 ‘김규진·김세연’

“대만으로 갈 것인가, 중국으로 갈 것인가
주변 변화를 보면… 바뀌지 못할 이유가 없다”

- 김규진씨(32), 김세연(35)

에세이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의 저자 김규진씨(32)와 그의 배우자 김세연씨(35)는 2019년 미국 뉴욕에서 혼인신고를 했고 부부가 됐다. 4년 뒤 벨기에의 한 난임병원에서 기증받은 정자로 인공수정을 한 규진씨는 지난 8월 30일 딸 ‘라니’를 출산했다. 출산 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의 인터뷰였다. ‘라니’에 대해서 얘기할 때 두 사람의 눈은 커졌다. 규진씨는 “이렇게 두고 나오면 보고 싶다”고 했고 세연씨는 “아이 낳길 잘했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동성 커플의 임신과 출산이 공개된 건 처음이다. 규진씨는 “어차피 알려질 것이면 크게 알려지는 게 좋겠다 생각했다”며 “4년 동안 사람들은 한 번만 상상력을 깨워줘도 많이 변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연씨의 동료들이 그랬다. 의사인 세연씨가 병원에 ‘커밍아웃’을 한 건 올해 3월이었다. 그때 세연씨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동료가 있었지만 그는 최근 세연씨에게 “병원에서 왜 배우자 출산휴가를 안 주느냐”며 오히려 화를 내며 “정말 속상했겠다”고 공감을 표했다. 세연씨는 “반 년 만에 내 입장을 이해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규진씨(왼쪽)와 김세연씨가 딸 라니를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다. 김규진씨 제공

김규진씨(왼쪽)와 김세연씨가 딸 라니를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다. 김규진씨 제공

여전히 법과 제도는 ‘꿈쩍’하지 않는다. 세연씨는 병원에 배우자 출산휴가를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회사 재량 아닌가’ 생각했지만 병원은 ‘법적 근거’로 대응했다. 서글펐던 것은 그 법적 근거가 ‘소성욱·김용민 부부’의 건강보험 자격 항소심 승소 판결문이었다는 점이었다. 동성 커플도 건강보험 피보험자가 가능하다는 판결로 성소수자 부부에게 의미가 큰 판결이었지만 병원에서 인용한 것은 판결문의 “현행법과 판례상 배우자가 아니다”라는 한 문장이었다. 세연씨는 “판결 취지는 ‘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사용되니 속상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라니’ 출생신고는 혼인신고보다 수월했다. 4년 전 한국에서 혼인신고할 때는 신청서를 내자마자 구청 직원이 놀라서 상급자를 불러오는 등 4시간이나 걸렸다. 출생신고는 30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규진씨를 ‘모’로 세연씨를 ‘부’로 접수했고 ‘불수리 증명서’를 받았다. 불수리 증명서에는 “출산한 사람이 ‘모’이고 ‘부’는 여자일 수 없으므로 수리할 수 없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김세연씨(왼쪽)와 김규진씨가 지난 9월25일 서울 강남구 한 갤러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김세연씨(왼쪽)와 김규진씨가 지난 9월25일 서울 강남구 한 갤러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규진씨는 “예상했던 일”이라며 “접수해야 선례가 생기고 통계적으로 ‘1’이 생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직접 거절당하는 건 또다른 경험”이었다. 규진씨는 “앞으로 세연이 ‘라니 엄마’라는 것을 증명하려면 너무 많은 설명이 필요하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임신 사실을 밝히자 ‘애한테 뭐라고 설명할 것이냐. 너무 이기적이다’라는 댓글을 종종 봤다. 규진씨는 “아이한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는 우리가 누구보다 많이 생각했다”며 “아이에게 조부모 가정, 그룹홈 등 다양한 가정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그대로 설명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규진씨는 조리원에서 ‘동기’도 만들었다. 라니가 어린이집, 유치원을 다닐 때도 자연스럽게 ‘두 엄마의 친구들’이 생기길 바라고 있다. 두 사람은 라니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한국을 바꾸기 위해 노력할 생각이다. 다만 아이가 ‘아빠가 없다’는 이유로 차별을 당한다면 이민도 고려할 계획이다. 규진씨는 “초등학교 시절에 받은 상처는 잊혀지지 않는 것 같아서 라니가 차별받을 위험이 있다면 다른 나라로 떠나는 걸 감수해서라도 지켜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세연씨(왼쪽)와 김규진씨가 지난 9월25일 서울 강남구 한 갤러리에서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 한수빈 기자

김세연씨(왼쪽)와 김규진씨가 지난 9월25일 서울 강남구 한 갤러리에서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 한수빈 기자

정치는 답답하다. 규진씨는 “총선이 되면 또 성소수자 이슈가 끌러나올텐데 다들 속상해할 것”이라며 “진지한 토론을 한 적도 없으면서 정치인들은 선거 TV 토론장만 가면 ‘동성혼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 묻는다”고 말했다. ‘사회적 합의’를 거론하는 것도 우습다고 생각한다. 세연씨는 “국회의원 세비 올리는 것에 대해서도 사회적 합의를 해준 적이 없다”며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있는 존재가 정치인”이라고 말했다.

“바뀔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결국 시간 문제라는 생각”이 두 사람의 동력이다. 규진씨는 “예전에는 우리만 멈춰있다는 생각에 절망적이었던 적도 있었지만 주변에서 변하는 걸 보니 이제 바뀌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연씨는 “한국 사회가 대만으로 갈 것인가, 중국으로 갈 것인가 생각하면 결국 민주주의 국가들처럼 인권을 생각하는 쪽으로 갈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 임아영 젠더데스크 layknt@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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