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관점으로 본 ‘이준석 신드롬’

한윤정 전환연구자

정치에 보통 시민 이상의 관심과 지식은 없지만,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나라를 흔들고 있는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에 대해 많은 궁금증이 생겼고 ‘이준석 신드롬’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대선 후보 토론회도 아니고 정당 대표 후보 토론회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 것도 처음이다. 지금 이준석 후보에 대한 관심과 (비)호감은 한 개인을 넘어 우리 사회의 어떤 증상이기에, 그가 대표가 되든 못 되든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다.

한윤정 전환연구자

한윤정 전환연구자

세대론은 사회 흐름을 읽는 거시적이고 흥미로운 지표라 언제나 모두의 관심을 모은다. 지난 60년을 돌아보면 4·19세대, 유신세대, 386세대, X세대, 88만원세대, MZ세대 등 여러 세대론이 이어졌다. 4·19세대부터 (3)86세대까지가 정치 상황에 따른 분류라면, X세대부터 MZ세대까지는 경제·문화적 상황에 따른 분류이다. 민주화 이후 정치 상황이 더 이상 세대 정체성에 영향을 주지 못하게 됐고, X세대부터 그런 조짐이 보였지만 MZ세대에 이르면 소비성향을 규정하는 자본과 기업의 입김이 강해진다.

이준석은 이제 기득권이 된 86세대에 맞서는 MZ세대의 대표주자이다. 나이도 그렇고 정확한 규칙을 요구하는 감성에서도 그렇다. 이번 당대표 선거에서 흥미로운 레토릭은 탈 것의 비유인데, 유력 경쟁자인 나경원 후보가 대선 과정을 한번 후보들을 태우고 종착지로 떠나면 그만인 트럭에 비유한 데 비해 이준석 후보는 정류장마다 서서 여러 후보를 태우는 버스에 비유했다. MZ세대의 감성은 레고 블록처럼 부품을 다양한 형태로 조립하는 ‘커스터마이즈(customize)’에 익숙하다. 일종의 유연성인데, 환경에 맞춰 스스로를 바꾸는 능력(진화)은 생명의 본질이란 점에서 그는 선배 정치가들에 비해 훨씬 ‘생태적’이다.

지난 이야기지만, 15년 전 88만원세대론이 처음 나왔을 때 파장이 컸다. 88이란 수는 88서울올림픽을 연상케 하면서 발전과 호황이 계속될 것 같은 행운의 숫자였는데 88만원세대에서 그것은 후퇴, 감축, 슬픔 같은 뉘앙스로 변했다. 88만원세대의 흐름이 여전한 가운데 코로나19 이후로는 아예 경제활동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격리된 ‘록다운세대’라는 말까지 나왔다. 88만원세대(이제 77만원세대일지도 모른다), 록다운세대는 능력주의와 소비성향이 강한 MZ세대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다. MZ세대의 대표주자인 이 후보가 자기 세대의 사회·경제적 위치를 제대로 대변할지는 미지수이다.

뛰어난 능력과 스펙을 가진 그를 생태계에 비유하면, 최강자인 육식동물이 떠오른다. 흔히 육식동물은 나쁘고 초식동물은 착하다는 편견이 있다. 고교 때 1년간 생물을 배운 것이 지식의 대부분인 나도 그랬다. 그런데 ‘모자람의 지혜와 무심한 공존’(정민걸 공주대 교수)이란 말에서 많은 걸 배웠다. 건강한 생태계는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이 공존하면서 선순환이 이뤄지는 곳이다. 그것은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내버려두기 때문이다. 포식자의 능력이 우리 생각과 달리 부족하기 때문에 아주 배고프지 않으면 피식자를 보더라도 공격하지 않고, 피식자 역시 그런 포식자를 경계하지 않음으로써 서로의 무심한 공존이 가능해진다. 인간사회의 육식동물이 나쁜 건 모자람과 무심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생태상식이 ‘이준석 신드롬’에 시사하는 바는, 그가 정치 생태계의 공존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는 것이다. 잘못된 약육강식의 논리로 무조건 상대를 궤멸시키려 드는 기존 정치 문법에서 벗어나 어떻게 화합의 정치를 선보일지 지켜볼 대목이다. 똑 부러지는 논리, 상대방의 약점을 파고드는 정확한 공격성이 불안하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명성은 정치실력보다는 공부실력에서 왔다. 우리 같은 학벌사회에서 ‘하버드대 졸업장’은 호감의 원천이다. 그러나 모자람의 지혜가 정치에서의 세대전환을 이뤄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나아가 녹색당의 젊은 정치인들과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많은 이들이 이 후보가 당대표에서 떨어지더라도 기존 진보가 보수로 몰리고,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는 흐름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 예측한다. 그럴 것이다. 늙음은 젊음을 절대 이길 수 없다. 더구나 우리는 새로움을 좋아하는, ‘젊은 민족’이다. 600년간 유교 국가였지만 온고지신은 민족성과 맞지 않다. 유불선을 통합한 최치원의 풍류도부터 개벽을 이야기한 최제우의 동학까지 불현듯 출현하는 새로움에 대한 기대가 컸으며 그것이 한국문화의 역동성이다(조성환 원광대 교수). 그럼 기성세대는 어떻게 할까. 나이를 잊고 함께 어울리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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