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때리는 그녀들의 가치

김민지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선생님은 체육시간마다 공을 주고 남자아이들을 내보냈다. 밖으로 나간 친구들이 운동장을 이리저리 가로지르며 서로의 골대에 공을 넣을 때, 여자아이들은 교실에 남아 인형옷을 만들어야 했다. 열 살의 우리들은 봉제, 아니 바느질의 기본도 몰랐고 그래서 제대로 된 완성품이 나올 리 만무했으며 당연히 재미도 없었다. 불행히도 그 선생님을 4학년 때 또 담임으로 맞았고 그렇게 나는 2년 동안 체육시간을 빼앗겼다. 아주 가끔 여자아이들에게도 운동장 놀이를 허락했는데 왜인지 운동장을 넓게 쓰는 축구가 아니라 한쪽에서 피구만 해야 했다. 그렇게 열 살의 나에게 축구는 남의 것이었다.

김민지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김민지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더 커서도 축구와 여자는 잘 연결되지 않았다.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이야기가 축구이야기, 군대이야기이고, 그중에 최악은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라는 농담은 고전처럼 전해졌고,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책에서 주인공의 매력은 신기하게도 축구를 좋아하는 여자라는 점이었다.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넓은 공간을 누비는 데다, 팀으로 협력하여 대결하는 스포츠라는 점에서 축구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성과는 정반대에 있다. 그러니 아주 유명한 프로선수 몇을 제외하고는 축구클럽에 아이를 데려다주는 엄마는 만나보았어도, 축구를 직접 하는 여자는 좀처럼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축구하는 여성이 떼로 나오는 예능이 시작됐다! 몸이 곧 경쟁력이자 그 자체로 커리어가 되는 톱 모델이 연습을 위해 발톱이 빠질 때까지 공을 찼다고 하고, 개그 소재로 많이 소비되던 큰 몸은 탱크 같은 돌파력과 파워를 가진 몸으로 소개되었다. 나와 가족을 이어주는 끈으로 축구를 꼽는 여성을 화면에서 만나는 신선함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골 때리는 그녀들>은 이미 파일럿을 거쳐 경쟁력을 증명해냈고 고정방송 첫 회에는 6.2%라는 시청률까지 잡았다.

예전에도 운동 프로그램은 있었다. 그러나 <우리동네 예체능> <뭉쳐야 쏜다> 같은 프로그램은 늘 몸을 좀 쓸 줄 아는 중년 남성들이 중심이었다. 서툴면 서툰 대로 왕년의 누가 이러고 있다며 놀리고, 잘하면 잘하는 대로 역시 실력은 어디 가지 않는다고 칭찬하며 화면에서 그들끼리 돈독한 관계를 쌓아갈 때, 나는 재미있게 보면서도 운동에 임하는 그들의 마음에까지 닿을 수 없었다. 아저씨들 참 재밌게 논다 싶었을 뿐, 나도 끼고 싶다거나 배우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거리진 않았다.

그런데 중년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서로의 몸으로 부딪치는 장면을 계속 보고 있자니 나도 함께 끼고 싶은 마음이 목 끝까지 차오른다. 실제로 여자축구단은 전국에 아주 많고 공식대회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왜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은 조기축구단 아저씨들은 늘 알고 있었으면서 여자축구팀은 잘 상상하지 못했을까.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의 김혼비 작가는 우연히 시작한 축구야말로 사회가 일방적으로 나누어놓은 구획의 경계를 흐리는 일이자 편견의 가짓수를 줄이는 싸움이라고 했다. 부디 이 싸움이 더 많이 알려지면 좋겠다. 남자 할 일, 여자 할 일을 미리부터 구분해놓고 그 반쪽의 세계에서만 살아가는 이들의 고정관념이 깨질 수 있도록 그녀들의 멋진 골이 많이많이 터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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