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에 비춰본 대선 후보의 자격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로 15명이 등록하면서 대선 정국이 본궤도에 올랐다. 대선일까지 일곱 달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국민들의 관심도가 예전 같지 않다. 코로나19 때문에 대중활동이 제한되고 있는 것이 영향을 주었을 수 있다. 그래도 심드렁한 대선 분위기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혹여나 민주화과정에서 ‘광장정치’를 통해 고비마다 주권자의 안목을 갈고 닦아온 국민들의 정치수준에 후보들이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 사회를 ‘정치과잉’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 사회에서 ‘과잉’되었다는 정치의 내용이나 질에 대한 성찰은 잘 드러나 있지 않다. 정치과정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되고 있는 계층이나 집단은 없는가? 정치과정에서 사회적 공론이 효과적으로 반영되고 있는가? 가장 정치적인 과정인 선거과정에서 정당 또는 후보자 간 정책논쟁이 얼마나 심도 있게 그리고 평등한 조건 속에서 전개되고 있는가?

민주공화헌법의 프리즘에 비추어보기에 한국 정치현실에서 과잉된 것은 국민생활과 국가의 명운에 관한 비전이나 공적 현안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라기보다 후보자의 신변잡기에 대한 감상적 인상론으로 보인다. 신변잡기 위주의 정치담론은 ‘권력의 의인화’에 따른 한계를 쉽게 노출하게 된다. 베버가 통찰하였듯이 ‘카리스마적 권위’가 매우 유력한 지배의 방식이고 지도자의 리더십이 정치과정의 유효한 변수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근현대정치사에서 이승만이나 박정희 신드롬, 3김 신화론의 오랜 그림자가 걷힌 이후에도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와 같이 대통령 중심의 정치서사가 지배적인 경향이 있다. 심지어 ‘새 정치’를 내세운 반정치·탈정치운동마저도 ‘안철수 현상’과 같은 인물 중심의 서사로 소비되기도 했다. 그러나 신변잡기 정치는 숙의와 토론보다는 권력이나 세력만으로 정치가 좌우되던 권위주의시대에서나 통할 수준이다.

이번 대선은 민주화 2기를 여는 헌법적 의미를 가질 것으로 전망된다. ‘직선쟁취’를 구호로 탄생한 87년 헌법은 유신헌법과 5공헌법의 제왕적 대통령직을 민주공화적 대통령직으로 전환한 민주헌법이다. 그러나 권위주의시대의 유산은 헌법적 전환에도 불구하고 적폐로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면서 현행 헌법의 권력구조에 제왕적 대통령제의 헛된 이미지를 덧씌우는 원인이 되었다. 교원이나 공무원, 청소년의 일상적 정치활동은 물론 예비후보와 유권자의 선거활동을 극도로 통제하고 유권자의 지지에 비례한 정당의석 배분에 역행하는 선거제도를 고집하는 선거법은 그 빙산의 일각이다. 검찰, 경찰, 정보기관 등 권력기관의 정치화는 헌법이 제도화한 민주적 대통령직에 제왕적 이미지를 덧씌우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한 세대에 걸친 제1기 민주화의 지난한 여정은 제왕적 대통령을 실제로 복원하려던 시대착오적 국정농단을 겪으면서 독재적 대통령직의 유산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제 한국 민주주의의 수준은 대선에서 백마를 탄 왕자나 공주를 기대하는 반민주공화적 환상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국민적 관심이 떨어지는 와중에도 주요 정당들에서 후보들이 전례없이 난립하고 있는 현실이 시사하는 바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치보다는 법집행에 익숙한 정치신인들이 너도나도 대선에 뛰어드는 상황도 맥을 같이한다. 이번 대선의 초반전에서 감지되는 심드렁함은 급조된 대선 후보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신변잡기 중심 정치담론의 공허함과 저급함에 있다. 국민들은 어느덧 민주공화국 헌법이 전제하듯이 영웅서사의 지배자로부터 시민의 대표봉사자로 대통령직을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했음에도 대선 후보나 정당은 아직도 철지난 신변잡기 정치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권교체나 정권유지의 일차적원적 구호만으로 진영을 구축할 수만 있다면 승자독식의 대통령제에서 해볼 만한 베팅이라는 오만한 결기는 헌법이 요구하는 시민적 덕성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허위적 정치공학이 낳은 신기루에 불과하다. 이제 한국 사회 모든 영역에 있어 현안들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정보화시대의 민주공화국에서 어설픈 공약이나 개인사적 미담만으로는, 대통령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공화적 권력관계의 이치를 체득하기 시작한 깨어 있는 국민의 마음을 얻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양차대전 후 독립한 나라 가운데 가장 성공적으로 민주공화제를 이룬 나라다. 이런 국격의 나라에서 국가원수이자 정부수반인 대통령으로 봉사하겠다는 후보들은 주권자 국민이 기대하는 것이 헌법이 요구하는 민주공화적 대통령직에 걸맞은 비전과 능력임을 한시바삐 직시해야 할 것이다.


Today`s HOT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