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3인방

엄치용 미국 코넬대 연구원

‘법대로’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법대를 졸업했으니 그들이 다녔던 길 역시 ‘법대로’였을 것이다. 사법시험을 보고 검사가 되었으니 삶 대부분을 ‘법대로’ 보냈을 것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 자택에서 계속된 보수 단체의 시위에 대해서도 ‘법대로’를 외친 대가는 현직 대통령 사저에서 벌어진 데자뷔 시위였다. 징계받던 검찰총장은 검찰의 독립을 강조했지만, 대통령이 되자 복사하듯 같은 일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식물 총장은커녕 검찰총장은 아직 공석이다.

엄치용 미국 코넬대 연구원

엄치용 미국 코넬대 연구원

지난달 화물연대 총파업에 대해서도 윤석열 대통령은 ‘법대로’의 대응을 강조했다. ‘법대로’의 테두리에 갇힌 대통령의 인식은 너무 강해 부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고, 후로도 계속되었다.

법은 개인의 자유를 갹출해 만든 사회 강제규범이다. 법과 도덕이 함께 사회를 유지한다. 법을 너무 내세우면 도덕은 땅에 떨어진다는 공자의 격언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법치는 필요하나, 지나치게 강조하면 부러진다. 한비자도 너무 강해 부러졌다. 부드럽지 않으면 귀가 열리지 않는다. 딱딱함으로 자신을 가두면, 그를 믿고 주문했던 유권자의 꿈은 사라진다.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경찰청장이 있는데 굳이 대통령이 나서서 법치를 얘기할 필요는 없다. 대통령은 국민에게 국가의 비전과 국민의 행복을 제시하는 정치인이다.

서울대 출신의 오십대 남자로 이뤄진 서오남이 윤석열 정부의 인사 전면을 채울 때 들었던 실망감은, 대통령 측근 검사들이 주요 보직을 차지하면서 검찰 공화국이라는 회의감으로 증폭되었다. 검사라는 신분이 능력 있는 사람의 대명사처럼 떠올랐다. 개인적 친분이 동지애로 바뀌기도 하고, ‘법대로’ 하자 없이 대통령실에 근무할 수 있는 포장법도 지켜보았다. 보수를 받지 않고 근무하면, 비선 실세도, 잘못된 일도 아님을 알게 되었다. 법대로의 자기애적 사랑은 이때 처음 부드럽게 보였다.

대통령실은 출근길에 잠시 멈춰서 진행하는 윤 대통령의 약식회견을 당분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 재유행의 여파건, 야당이 주장하는 발언 뒤의 진땀 수습과 지지율 하락이 원인이건 한 박자 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지금의 윤 대통령 지지도 하락은 그를 응원했던 지지자가 꿈을 꾼 뒤 보내는 감정의 등급이다.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는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일제히 30%대로 폭락하는 모양새다. 3주 연속이다. 국민의 지지율 없이 정책은 홀로 가지 못한다. 민심을 읽지 못한 지도자가 성공한 예는 드물다.

검찰총장 선발은 미루어 둔 채, 제2의 ‘법대로’ 인물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취임과 동시에 속전속결로 주요 검사장 인사를 단행했다. 전면에 등장하는 윤석열 사단이라는 그들만의 리그에 다시 경악했다. 딸의 미리 서명된 선제적 봉사활동기록과 논문의 표절, 대필 의혹에 대해서는 대학입시에 사용할 계획이 없으므로 ‘법대로’ 하면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논리가 희한했다.

‘좌동훈 우상민’의 일원인 판사 출신 행정안전부 장관의 구상은 현행 정부조직법대로 검경 장악을 완성하겠다는 의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을 합리화함으로써 국가경찰위원회가 가진 인사·정책에 대한 심의·의결권을 모두 거둔다는 의미이니, 제3의 ‘법대로’ 구상이 기가 막힌다.

이제 윤 대통령은 검사의 옷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새로운 국민 통합의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가야 한다. 법률로 가득 찬 이전의 차가운 책장을 던져버리고, 새롭게 채운 대통령의 서재에서 민초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품격의 정치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 처음 하는 것이라 어색하다면 더더욱 ‘법대로’만의 고집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지난 정권이 그리도 무능해 보였다면 화법에서 비교의 대상을 바꿔야 한다. 위기의 상황에서 올바른 리더십을 보여준 지도자는 많다. 롤모델을 바꾸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다. 다행히 이제 걸음마를 뗀 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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