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받은 건 청력이 아니라 기본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김월회의 행로난] 시험받은 건 청력이 아니라 기본

국민이 정치인으로부터 시험받는다는 것은 봉건왕조라면 모르겠지만 민주공화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근자에 우리 국민은 청력 테스트를 강요받았다. 그런데 국민이 시험받은 건 그저 청력이 아니었다. 외양은 청력 테스트였지만 실질은 기본 테스트였다. 국민의 기본 말이다.

국민의 기본은 무엇일까? 우리나라가 민주공화국이고 헌법 제1조에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됐으니 제일가는 기본은 주권자라는 정체성이다. 그렇다면 주권자의 기본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주권행사를 바르게 할 줄 아는 역량의 구비가 제일로 꼽히지 않을까 싶다. 주권자는 바로 주권을 행사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주권을 바르게 행사하려면 어찌해야 할까? 공자라면 주저 없이 정명(正名)을 해야 한다고 답했을 것이다. 제자 자로가 위나라 군주가 선생님께 정사를 맡기려 하는데 취임하시면 무엇을 가장 먼저 하시겠냐고 여쭈었을 때 공자는 추호의 머뭇댐도 없이 정명을 하겠다고 대답했다. 정명은 ‘이름값을 바로잡는다’는 뜻으로, 여기서의 이름값은 예컨대 ‘다움’으로 대체 가능하다. 임금이라는 이름이 있으면 임금다움이, 신하에게는 신하다움이 그 이름값이라는 것이다.

언뜻 공자가 참 한가한 얘기를 한다는 인상이 들 수 있다. 하여 자로도 답변을 듣자마자 돌직구를 날렸다. “선생님께서는 세상 물정에 정말 어두우시군요!” 당시는 혼란했던 시절인데 가장 먼저 한다는 것이 이름값을 바로잡는 일이라니, 자로의 반응에 절로 동의가 된다.

그러나 이는 바로잡는다는 활동의 실질을 오해한 결과에 불과했다. 바로잡는다는 것은 이름값의 내용을 수정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름값대로 정확하게 실천케 한다는 뜻이다. 임금다움을, 신하다움을 엄격하게 실천케 한다는 얘기다. 공자 보기에 세상이 혼란해진 근본 원인은 임금이 임금다움을, 신하가 신하다움을 실천하지 않아 사회가 그 기본부터 허물어진 데 있었다.

이러한 공자의 통찰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럼에도 정치인답지 못한 정치인들이 국민의 주권자다움을 시험하고 있다. 주권자가 그들에게 기본의 구비를 요구하자 적반하장 격으로 그러는 국민 당신들은 기본을 갖추었냐고 되묻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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