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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부대 상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신고한 해군 여중사가 부대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 5월 상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신고한 공군 여중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발생한 데 이어 군내 성추행에 따른 사망사건이 또다시 발생한 것이다.

사망한 해군 여군 A중사는 사건이 일어난 부대 부임 사흘 만에 피해를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A중사는 당일 상관에게 이를 알렸지만 정식신고 하기까지는 75일이나 걸렸다. 피해자가 외부 유출을 원치 않았다는 것이 해군의 주장이다.

그러나 피해자가 사건 당일 상관에게 보고했지만 두 달 넘게 가해자와의 분리조치 같은 기초적인 피해자 보호는 이뤄지지 않았다. A중사가 피해를 당한 후 사망할 때까지 두달 반 동안 군내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규명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부대 상사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는 신고를 한 해군 여성 중사가 부대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13일 빈소가 마련된 대전 유성구 국군대전병원에 화환을 실은 화물차가 들어가고 있다.

부대 상사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는 신고를 한 해군 여성 중사가 부대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13일 빈소가 마련된 대전 유성구 국군대전병원에 화환을 실은 화물차가 들어가고 있다.

신고부터 사망까지 두달 반
무슨 일이 있었나



13일 해군 관계자에 따르면 A중사는 지난 5월24일 해군2함대 소속 한 도서지역 부대에 부임했다. 3일 뒤인 27일 같은 부대 상관인 B상사의 요청에 따라 부대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날은 전투휴무일이었다. B상사는 이 자리에서 부적절한 신체접촉 등 성추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A중사는 사건 당일 피해사실을 주임상사에게 알렸다.

해군 측은 A중사가 주임상사에게 성추행 사실을 말하면서 일체 외부로 유출하지 말라고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주임상사는 이 사건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가해자인 B상사만 따로 불러 “행동을 조심하라”며 주의를 줬다는 것이 해군 측 설명이다.

A중사는 이달 7일 피해 사실을 부대 지휘부에 알렸다. 감시대장과 1차 면담을, 소속 부대장과 2차 면담을 각각 진행했다. 성추행 정식신고는 면담 후 이틀이 지난 9일 이뤄졌다. 사건 발생 후 두 달 반 만이다. A중사는 부대장에게 피해 사실 정식 보고와 육상부대 전출을 요청했다. 부대장은 이날 함대 군사경찰, 해군작전사령부에 보고하고 해군본부 양성평등센터에도 알렸다. A중사에 대한 육상부대 전출조치는 이날 이뤄졌다.

해군 수사기관은 11일 B상사를 입건했다. 같은날 A중사는 19일까지 청원휴가를 냈으며, 휴가 이튿날인 12일 부대 독신자 숙소 내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A중사는 육상부대에 도착한 후 부대 성고충상담관과 전화로 총 8번 상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76일만에야 국방부 보고
“피해자가 외부공개 원치 않았다”는 해군



해군본부 군사경찰은 11일 부석종 해군참모총장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이 사건을 보고했다. 조사본부는 당일 서욱 국방부 장관에게 서면보고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건이 정식신고된 9일을 기준으로 본다면 이틀만이지만 성추행 피해 발생일을 기준으로 하면 76일만에 군 수뇌부가 해당 사건을 알게된 셈이다.

해군 측 주장대로 피해자가 외부공개를 원치 않았다고 해도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는 가해자와의 분리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점 등 후속조치가 미흡했던 것으로 보인다. 해군 관계자는 “법령상으로는 성추행 사고가 일어나면 (인지 즉시) 보고하게 돼 있고, 훈령상에는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보고하지 않도록 돼 있어 상충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해군 성추행 피해자의 사망, 76일만에 알았다는 국방부[플랫]

회유·압박 등 2차가해 의혹도
또다시 고개숙인 대통령과 장관



피해 초기엔 신고를 원하지 않던 A중사가 8월7일 다시 부대장과 면담을 요청하기까지 부대 내 회유와 압박이 있었는지도 규명해야 할 부분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A중사 유족이 ‘5월27일 성추행 이후 부대 내 가해자의 지속적인 따돌림과 괴롭힘이 있었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하 의원에 따르면 A중사는 이달 3일 “일해야 하는데 (B상사가) 자꾸 배제하고 그래서 오늘 그냥 부대에 신고하려고 전화했다. 내가 스트레스 받아서 안 될 것 같다”는 내용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자신의 부모에게 보냈다. 또 B상사는 사과하겠다며 A중사를 불러 술을 따르게 했는데 이를 거부하자 “술을 따라주지 않으면 3년 동안 재수가 없을 것”이라는 취지의 악담 등 2차 가해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욱 국방부장관은 이날 국방부 관계자를 통해 “있어선 안될 일이 발생한 데 대해 유족과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지난 6월 공군 여군 중사 성추행 사망 사건에 대해 사과를 한 지 두달 만에 또다시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유가족들에게 어떻게 위로의 마음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한 치의 의혹이 없도록 국방부는 철저하고 엄정하게 수사하라”는 입장을 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4일 공군 중사 성추행 사망 사건과 관련해서도 “사전에 막지 못했을 뿐 아니라 허위 보고와 은폐, 부실 보고 등 사후 대응도 문제가 많았다”고 질타했으나 한달도 안돼 유사한 비극이 재발했다.

국방부는 조사본부와 해군 중앙수사대 전문인력으로 특별수사팀을 구성했다. 국방부 특별수사팀은 가해자인 해군 상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han.kr
박은경 기자 yama@khan.kr
김상범 기자 ksb1231@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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