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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주변에 지나가는 20대 남자들이 그냥 신고 처리하고 있었을 뿐인 저를 보고 ‘오또케’ ‘오또케’ 이러더라.” 추지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경찰청 의뢰로 시행한 ‘남녀 경찰관 초점집단 면접조사(FGI)’에서 일선 경찰관이 호소한 내용이다. 지난해 11월 ‘경찰 성평등 문화 조성을 위한 젠더 의제 토론회’에서 추 교수는 ‘여경 혐오 담론’이 여성은 물론 남성 경찰관들까지 직무 몰입이나 헌신도를 떨어뜨려 경찰행정서비스의 질 저하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21년 3월 충남 아산 경찰대학에서 열린 신임경찰 경위·경감 임용식에서 임용자들이 임용선서를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2021년 3월 충남 아산 경찰대학에서 열린 신임경찰 경위·경감 임용식에서 임용자들이 임용선서를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오또케’는 ‘어떡해’의 변용이다. 여성 경찰관들이 현장에서 소극적이며 무능하다는 취지로 조롱하고 비하하는 표현이다. 2019년 서울 대림동에서 술에 취한 남성을 제압하는 여성 경찰관을 촬영한 영상이 유포된 이후 ‘오또케’로 상징되는 여경 혐오가 확산됐다. 경찰은 전체 영상을 공개하며 대응에 문제가 없었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오또케’는 이후 경찰을 넘어 모든 여성에 대한 조롱의 표현으로 쓰임새가 확장됐다. 지난해 GS25 편의점 일부 매장에서 아르바이트 직원을 모집하며 “오또케오또케하는 분은 지원하지 마세요”라는 공고를 내 논란이 됐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공개한 사법정책 공약 보도 참고자료에 ‘오또케’가 등장했다. 국민의힘은 경찰개혁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경찰관이 ‘오또케’하면서 사건 현장에서 범죄를 외면했다는 비난도 있”다고 했다. 제1야당이 공식 자료에서 저열한 언어로 여성과 경찰을 깎아내린 것이다. 원희룡 선대본부 정책본부장은 “해당 단어를 즉시 삭제하고, 책임자를 해촉했다”며 사과했다.

지난해 말 위기에 빠졌던 윤 후보는 올해 초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로 지지율 반등에 성공했다. 이후 그의 ‘성별 갈라치기’에는 거칠 것이 없다. 최근엔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희대의 어록까지 남겼다. 이번 자료를 만든 전문가는 페이스북에서 “20대 남녀의 갈등을 몰랐다. 혐오의 의미로 사용하지 않았다”면서 “후보님에게 죄송한 마음뿐”이라고 했다. 해명이 사실이라면 “죄송한 마음”을 품어야 할 이는 그가 아니라 윤 후보다. 그동안 윤 후보가 혐오에 기반한 캠페인을 벌이지 않았다면, 그가 오해받는 일은 없었을 테니.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발표한 사법개혁 공약 보도자료(사진)에 여성혐오 표현인 ‘오또케’라는 단어가 포함됐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발표한 사법개혁 공약 보도자료(사진)에 여성혐오 표현인 ‘오또케’라는 단어가 포함됐다.

윤석열의 ‘혐오 세일즈’
그리고 우익 포퓰리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이하 윤석열)가 TV토론에서 다른 후보를 바라볼 때 자세를 바꾸지 않고 고개만 돌리는 모습을 보여 지적받았다. 이를 두고 “누군가의 제스처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고 쓴 글을 소셜미디어에서 접했다. 공감한다. 누구에게나 자신은 모르는(혹은 알면서도 못 고치는) 습관이 있게 마련이다. 그 습관은 신체 조건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 경우가 많다. 검증해야 할 것은 눈에 보이는 ‘습관’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각’이다. 타인의 생각을 읽는 길은 그의 말과 글을 통해서다. 최근 윤석열의 대표적 어록은 “국민이 잘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외국인 건강보험 문제를 해결하겠다”일 터다. 이미 여러 언론이 ‘팩트체크’한 바와 같이, 사실과 다르다. 외국인 건보 재정은 흑자다.

선거 국면이 본격화된 이후여서 파장이 컸을 뿐,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의 징후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사람이 손발 노동으로, 그렇게 해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그건 인도도 안 한다.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다.”(지난해 9월) 그는 최근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현장에 가서도 “어디 후진국이나 미개한 국가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윤석열의 또 다른 어록은 “여성가족부 폐지”다. 그는 성평등 정책 주관 부처를 없애는 대신, 인구감소 문제를 다룰 부처를 만들겠다고 했다. 성범죄 피해자 중 무고죄로 기소된 비율이 0.78%(2019년)에 불과한데 성폭력처벌법에 무고죄를 신설하겠다고 했다. 역시 전조는 있었다. 지난해 8월 “페미니즘이 악용돼 남녀 간의 건전한 교제도 막는다”고 말했다. 7일자 한국일보 인터뷰에선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라고 선언했다. 무지인가 오만인가. 둘 다인가.

윤석열의 반외국인·반페미니즘 행보를 두고 20대 남성 표심을 공략하기 위한 것이란 해석이 많다. 의도엔 관심 없다. 공동체에 미칠 영향을 주목할 뿐이다. 포퓰리즘 연구자인 카스 무데 미국 조지아대 교수가 2019년 펴낸 <혐오와 차별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한국판은 2021년 2월 출간)는 21세기 우익포퓰리즘의 실체를 이렇게 설명한다.

“극우는 ‘외국인’을 경멸적 용어로 묘사한다. 예를 들어 인도인민당의 아미트 샤는 인도의 방글라데시 이민자들을 ‘침입자’와 ‘(인도를 갉아먹는) 흰개미’라고 비난했다.”

“극우에서 여성은 어머니(또는 예비 어머니)로만 정의된다. 헝가리의 급진우익 총리 오르반 빅토르는 새 헌법에 가족주의를 포함했다. 극우는 전통적 성역할을 촉진하는 정책에는 관대하지만, 임신중절 합법 같은 정책은 반대한다.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단체와 개인에게 공격성을 드러낸다.”

외국인을 혐오하고, 여성을 차별하는 행태는 늘 있어왔다. 그럼에도 온라인을 포함한 공적 공간에서 이를 ‘발화’하는 일은 암묵적으로 규제돼왔다. 혐오와 차별은 공동체가 함께 지켜온 ‘룰’을 깨뜨리고 민주주의 시스템을 뒤흔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선을 넘었다. 유력 정치인과 정당의 ‘혐오 세일즈’는 위험한 신호를 주고 있다. 수면 아래 잠겨 있던 혐오,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던 차별이 스멀스멀 공론장으로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진지한 토론 주제로서가 아닌, 몇 글자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콘텐츠)이 되어 떠돈다.

윤석열은 8일로 예정됐던 한국기자협회 주최 TV토론에 참여하기로 했다가 무산시켰다. 그가 토론에 소극적인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페이스북의 ‘일곱 글자’가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데, 굳이 2시간 넘게 서 있을 필요가 없지 않나. 윤석열은 최근 광주에서 “내편 네편 가르지 않는 통합의 정치를 하겠다”고 했다. 갈라치기 행보에 대한 반성일까. 역시 호남 맞춤형 ‘밈’일 것이다.

다시 무데의 책이다. “주류(우익) 정당과 우익포퓰리즘 정당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우익포퓰리즘 정당과 이념은 언론과 경제, 시민사회, 정치권에 의해 용인되고 받아들여진다. 이는 영국의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당선을 계기로 새 국면에 도달했다.” 아직까지는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주류 후보·정당이라 믿고 싶다. 그러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한두 발만 더 옮기면 우익포퓰리즘 딱지를 떼기 어려울 것이다.

무데의 결론은 이렇다. “극우 정치에 면역력을 가진 나라는 없다. 아직까지 극우 정당이 성공을 거두지 못한 나라들이 있다 해도, 수요 문제라기보다 공급 문제일 뿐이다.”


김민아 논설실장

※이 기사는 2022년 2월15일 <[여적] ‘오또케’>와 2022년 2월7일 <[김민아칼럼] 윤석열의 ‘혐오 세일즈’, 그리고 우익포퓰리즘> 두 기사를 병합해서 재가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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