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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슬램 23회 우승’에 빛나는 테니스의 전설 세레나 윌리엄스(41)가 은퇴를 예고했다.

그는 9일(현지시간) 공개된 미국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나에게 중요한 다른 것들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테니스 코트를 떠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세레나 윌리엄스가 지난 8일(현지시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내셔널뱅크 오픈에 출전해 경기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세레나 윌리엄스가 지난 8일(현지시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내셔널뱅크 오픈에 출전해 경기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윌리엄스가 말한 ‘중요한 다른 것’은 가족이다. 그는 인터뷰가 공개된 직후 인스타그램에 “나는 진심으로 테니스를 좋아했다. 하지만 이제 카운트다운은 시작됐다”며 “나는 내 정신적 목표였던 ‘엄마가 되는 것’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고 적었다.


전설적인 커리어를 가진 여성 선수로서 자부심을 드러냈던 윌리엄스는 이번 결정에 대한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가족에 더 집중하겠다는 결정 뒤에 ‘일·가족 병행’의 어려움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나는 정말로 테니스와 가족 중 하나를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 상황이 공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남자였다면 이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내가 가족을 확장하기 위한 육체노동을 하는 동안, 나는 밖에 나가 경기에 뛰고 또 이겼을 테니까.”

 “만약 나에게 그런 기회가 있다면 톰 브래디(최근 은퇴를 번복한 미국 미식축구(NFL)의 전설적인 쿼터백)같은 선수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오해하지는 말아달라. 나는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사랑했고, 올림피아를 임신한 모든 순간을 사랑했다.”

 “상황이 굉장히 복잡해졌지만, 나는 병원에 가야 했던 그 날까지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거의 불가능한 일들을 했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2017년 호주 오픈에서 우승했을 때 임신 2개월차였다는걸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다음 달에 41세가 된다. 무언가 포기해야 할 때다.”



1990년대 말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던 윌리엄스는 2014년 자신의 이름을 딴 투자회사 ‘세레나 벤처스’를 설립하며 사업가로 변신한다. 2017년엔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의 공동창업자인 알렉시스 오하니안과 결혼했고, 딸 올림피아를 출산했다.

이후 윌리엄스는 테니스 선수에서 사업가로, 엄마이자 아내로 조금씩 삶의 중심을 옮겨갔다. 그럼에도 최근까지 ‘은퇴’는 금기어였다고 했다. 남편이나 부모와도 이와 관련된 대화는 일절 하지 않았다. ‘인생의 전부’였던 테니스를 그만두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차올랐기 때문이다.

윌리엄스는 여전히 상황을 받아들이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솔직히 말하면 이 주제(은퇴)에 있어 나에게 행복감은 조금도 없다. 이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괴로운 일”이라면서도 “나는 그것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지만 동시에 다음으로 나아갈 준비도 됐다”고 했다.

그는 “캘리포니아 컴튼에서 시작된, 그저 테니스가 치고 싶었던 어린 흑인 소녀 이야기는 이제 막을 내린다”면서 자신의 선택이 ‘은퇴’가 아닌 ‘진화’로 읽히길 바란다고 전했다.

“나는 ‘은퇴(retirement)’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에게 그 단어는 현대의 단어같지가 않다. (...) 내가 하려는 것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절한 단어는 아마도 ‘진화(evolution)’일 것 같다. 나는 테니스를 떠나 나에게 소중한 다른 것들을 향해 진화하고 있다고 말하기 위해 이 인터뷰에 나왔다.”

“나는 내 업적에 대해 말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그 기회 덕분에, 여성 운동 선수들도 코트 위에서 온전한 자신이 될 수 있음을 느꼈다고 믿고 싶다. 그들은 공격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고, 주먹을 불끈 쥘 수도 있다. 강하지만 동시에 아름다울 수 있다. 원하는 걸 입고, 원하는걸 말하고, 엉덩이를 걷어차고, 그 모든 것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다. 나는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고, 비판도 많이 받았다. (...) 내가 프로 테니스 선수로서 그 힘든 시간을 거쳐왔기에 다음 세대가 더 편안해졌다고 믿고 싶다.”



비너스·세리나 윌리엄스 자매를 키워낸 아버지의 삶을 바탕으로 한 실화 영화 <킹 리차드>의 포스터. 윌리엄스 자매의 아버지 역을 맡은 윌 스미스는 이 작품으로 2022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비너스·세리나 윌리엄스 자매를 키워낸 아버지의 삶을 바탕으로 한 실화 영화 <킹 리차드>의 포스터. 윌리엄스 자매의 아버지 역을 맡은 윌 스미스는 이 작품으로 2022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윌리엄스는 1999년 18살 나이로 US오픈을 제패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이후 30년간 통산 73승, 메이저 대회(호주 오픈, 프랑스 오픈, 윔블던, US 오픈)에서만 23회 우승하며 테니스계의 전설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백인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테니스계의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강하게 비판해 온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2018년 프랑스 오픈에서 검은색 전신 보디슈트를 착용하고 등장해 여성 선수들의 ‘흰색 치마 착용’을 권고하는 성차별적 복장 규정에 반기를 들었다. 같은해 US오픈 결승전에서는 심판에게 격렬하게 항의하는 행동으로 벌금을 부과받았는데, 남성 선수들도 비슷한 행동을 한 적이 있지만 징계를 받은 적은 없었다고 지적하며 ‘테니스계 성차별’ 논쟁에 불을 붙였다.

윌리엄스는 전성기를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현역 선수로 활동 중이다. 지난 8일(현지시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WTA투어 내셔널뱅크 오픈 단식 본선 1회전에서는 누리아 파리자스 디아스(스페인·57위)를 2-0(6-3, 6-4)으로 완파했다. 1년 2개월만의 WTA 투어 승리였다.

그는 “너무 오랜만에 이겨서 어떤 느낌인지도 모르겠다”며 “이제 터널 끝에서 빛이 보이는 것 같다”는 소감을 밝혔다. 미국 언론들은 그가 이달 말 뉴욕에서 열리는 US오픈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할 것이라 전망한다. 다만 윌리엄스는 이번 인터뷰에서도 정확한 은퇴 시점은 밝히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의 팬들에게, 그리고 30년간 치열하게 달려왔던 과거의 자신에게 덤덤하고도 우아한 작별 인사를 건넸다.

“불행하게도 난 올해 윔블던에서 이길 준비가 되지 않았다. 올해 뉴욕(US 오픈)에서도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 계속 노력할 것이다. (...) 팬들은 내가 ‘은퇴전’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작별인사를 하는 판타지를 기대하겠지만, 나는 코트 위 의례적인 마지막 순간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작별인사는 잘 하지 못한다. 세상에서 제일 못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들에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맙다는 것만 알아줬으면 좋겠다. 당신들은 나에게 수많은 우승과 수많은 트로피를 안겨주었다. 나는 ‘테니스 치던 소녀’였던 세레나가 그리울 것이다. 그리고 당신들이 그리울 것이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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