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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여성스럽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던 중국 남성 사진작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중국에서 ‘여자같은 남자’를 둘러싼 논쟁이 번지고 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지난 1일(현지시간) 저장성 저우산시에서 저우펑(26)이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그는 지난달 28일 웨이보에 그동안 어떤 고통을 견뎌왔는지 자세히 묘사한 5000자짜리 장문의 글을 올린 후 잠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경찰은 살인 혐의를 배제했다고 밝혔다.

저우펑은 유서로 추정되는 글에서 학창시절부터 ‘여성스럽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남자들은 버릇없고 싸움질하러 다니고 욕을 해야 한다. 너무 조용하거나 공손한 남자애들은 여성스럽고 계집애같다고 손가락질을 받는다”고 썼다. 또 “나는 평범한 옷을 입었고 여자애들을 따라 하려고 하지도 않았다”면서 “그래도 나는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고 언어폭력과 따돌림을 당했고 협박을 받았다. 온갖 모욕을 당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2020년 7월 중국 학생들이 베이징의 한 고등학교에서 대학 입학 시험을 치르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2020년 7월 중국 학생들이 베이징의 한 고등학교에서 대학 입학 시험을 치르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저우펑의 죽음을 계기로 중국 사회의 고정관념에 대판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에선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 특히 남성에게 기대되는 사회적인 이미지가 매우 엄격한 편이기 때문에 또래들이 보기에 ‘남자답지 않은’ 아이들은 학교 폭력에 시달리기 일쑤다.

그가 웨이보에 올린 글에도 “같은 반 친구가 여성스럽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했다”, “여리여리한 외모와 목소리 때문에 비웃음을 사는 친구들이 있었다”는 네티즌들의 경험담들이 댓글로 달렸다. “남자애들은 전통적인 남성상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괴롭힘을 당했지만, 사실 이들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거나 “성별 고정관념에 따른 차별과 교내 폭력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며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저우펑의 유서는 웨이보에서 약 9억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7만1000건이 넘는 추모의 글이 달렸다. 웨이보에선 ‘#루다오센(저우펑의 예명)처럼 고통받는 다른 이를 구하자’란 해시태그가 3억4000만 회 이상 공유되기도 했다.

저우 펑은 지난 1일(현지시간) 중국 저장성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 저우 펑 웨이보

저우 펑은 지난 1일(현지시간) 중국 저장성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 저우 펑 웨이보

BBC는 이 사건이 중국 정부가 나서 ‘남성다움’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해 5월 쓰쩌푸 중국 인민 정치협상회의 상무위원이 남자 청소년들의 여성화 추세를 비판하자 교육부는 올해 초 ‘남성 청소년의 여성화 방지 제안서’를 공개했다. ‘학생들의 남성성을 함양하기 위해’ 은퇴한 운동선수나 스포츠계 이력을 가진 이들을 체육 교사로 모집하고, 면제 학생을 제외하고 신체 건강 자격 기준을 충족하지 않는 경우 졸업장을 발급하지 않는 등 조치를 취하자는 내용이었다.

지난 9월 방송계엔 ‘여성스러운 남자’ 금지령이 떨어지기도 했다. 중국 방송규제기구인 국가방송총국(NRTA)은 대중문화 분야에 대한 고강도 규제안을 발표했는데, 여기엔 “냥파오(여성스럽게 보이는 남자)’ 등 기형적인 미적 감각을 엄격히 차단한다”는 조항도 포함돼 있었다.

일각에선 중국 공산당이 중화민족의 부흥으로 나아가는 데 ‘여성스러운 남성’을 걸림돌이라 여기기 때문에 이들을 부정적으로 그리려 한다고 분석한다. 노팅엄 대학 아시아 연구소의 조나단 설리번 박사는 “‘세계에 대항하는 우리’라는 강한 이미지를 만들고 외국 열강들과 싸우는 데 있어 부드러운 메트로섹슈얼(패션과 트렌드에 민감하고 꾸미는 데 관심이 많은 남성)의 이미지는 부합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라 BBC에 말했다.


김혜리 기자 harry@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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