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
플랫

플랫팀

여성 서사 아카이브

“휠체어 타고 굴러다니니까, ‘구르님’이죠. 저를 응원해주는 구독자들은 같이 데굴데굴 구른다는 의미에서 ‘데굴단’이고요.”

‘휠체어 위의 유튜버’, 김지우 작가(21)가 <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휴머니스트)를 냈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시작해 6년 동안 유튜브 채널 ‘굴러라 구르님’을 운영해왔다. 그의 채널에선 ‘조선시대에 휠체어가 있었다면?’, ‘휠체어 탄 하이틴 악녀 되어보기’, ‘휠체어 타고 고양이 안는 법’ 같은 톡톡 튀는 영상을 만날 수 있다. 다른 곳에선 보기 힘든 그만의 기획이다. 이처럼 장애인의 존재를 드러내고 편견을 없애려 노력했다는 평을 받으며 지난해엔 유튜브가 ‘유튜브와 함께 선정한 50인’에 선정하기도 했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인의 일상을 재미있게, 그러나 묵직하게 전달한다. 일례로 그의 ‘휠체어 꾸미기’는 단순히 외형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에 그치지 않고 ‘당당함’을 획득하자는 의도를 담았다. 김지우 작가의 휠체어는 ‘구독, 좋아요, 알림 설정’을 넘어 더 넓은 사회와 소통하는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다. 하고 싶은 것도, 할 말도 많은 청년 김지우 작가를 지난 6월 29일 인터뷰했다.

뇌병변 장애인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를 출간한 유튜버 김지우 작가가 지난달 29일 서울 성북구의 한 카페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뇌병변 장애인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를 출간한 유튜버 김지우 작가가 지난달 29일 서울 성북구의 한 카페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계속 목소리를 내다보면 대표성을 띠게 될 텐데 부담스럽진 않나.

“소수자성을 가진 이들이 그냥 개인적으로 말하는 건데도 다른 이들이 그 정체성을 근거로 공격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창작자로서 말을 하다 보니 장애인 모두를 지칭하는 느낌으로 날 봐주는 것 같다. 휠체어를 탄다고 해서 다 못 걷는 게 아닌 것처럼 장애를 결코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데도 너무 많은 것들이 ‘퉁쳐진다’. (이번 책은)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로 보였으면 좋겠다.”

-책에서 엄마, 아빠를 ‘현미’와 ‘태균’이라고 지칭한 건 어떤 의도인가. 읽으면서 처음엔 친구나 강아지인 줄 알았다.

“엄마, 아빠 이야기를 쓰려 했는데, (글에서) ‘엄마’나 ‘아빠’라고 부르면 사회적인 맥락에서 모성애, 희생 같은 것들이 너무 쉽게 달라붙을 것 같았다. 장애인의 부모로서 ‘희생하는 부모’로 읽히는 게 아닌 그냥 ‘사람’으로 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름으로 불러보면서 ‘나의 엄마’, ‘나의 아빠’가 아닌 그 사람의 이야기를 쓰고자 했다.”

김지우 작가의 책 <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 . 권도현 기자

김지우 작가의 책 <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 . 권도현 기자

-대중교통, ‘탈 것’에 관한 경험도 다뤘다. ‘브이로그를 찍을 뿐인데 사회운동이 된다’고도 표현했던데, 어떤 의미인가.

“모든 사회적 행동의 시작은 집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대중교통이 가장 많이 부딪히는 공간이고, 또 스스로 제일 위험하다 느끼는 공간이기도 해서 쓰게 됐다. 지하철엔 왜 틈이 있는지, 장애인은 왜 버스엔 탈 수가 없는지 물었을 때 ‘그게 당연하다’고 하는 순간 바뀔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특히 대중교통은 너무 많은 시민이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수단이다 보니 ‘낯설게 보기’가 쉽지 않다. 그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자연스러운 것일수록 제일 낯설게 봐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얘기를 많이 하게 된다.”

📌[플랫]김예지 의원 “장애인 이동권 토론? 숨 쉬는 것도 찬반 나눌 수 있나”

-재학 중인 대학은 이동하기가 어떤 편인가.

“학교가 몇년 연속 장애학생 교육 실태조사에서 ‘최우수’를 받았다. 막상 다녀보면 정말 불편하다. 기준 자체가 낮다는 말도 되고, 이 정도가 ‘최우수’면 이걸 못 받은 대학은 어느 정도인가 싶기도 하다. 예를 들어 건물에 엘리베이터는 다 있지만, 안내가 제대로 돼 있지 않아 빙빙 돌아가야 한다. 20~30분을 헤매는 게 당연해진다. 도서관에서도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별도로 카드를 찍어야 한다. 매번 그걸 빌리고 반납해야 하고 심지어 찍는 곳도 위에 있어서 휠체어에서 일어나야 한다. 이런 ‘접근성’의 문제에선 수치로 보이지 않는 게 많다. ‘지하철역 94%에 엘리베이터가 있지 않냐’는 식이다. 신당역을 보면, 2호선에서 6호선으로 갈아탈 때 출구로 올라와 10분 정도 걸어야지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환승할 수 있다. 비장애인은 1분이면 된다. 그 10분, 20분이 모이면 얼마나 큰가. 접근성은 퍼센트 수치를 채웠다고 완전해지지 않는다.”

📌[인터랙티브]여기서 빠지면 내탓입니다. 두 바퀴엔 절벽 같은 ‘28cm’

-장애인과 사귀는 사람을 ‘대단하다’고 보는 시선을 언급하는 등 장애인의 연애를 비중 있게 다뤘다.

“장애인이 당연한 욕망을 가져도 마치 욕심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 여행가고, 연애하고, 패션에 관심을 갖는 것처럼 비장애인에게는 취미, 재능, 여가활동인 것이 장애인이 하려 하면 ‘몸도 불편한데 기본만 해라’가 된다. 그래서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장애인도 성욕이 있다, 장애인도 연애를 한다고 하면 뒤집어지게 놀라는 경우가 많아 더더욱 연애 얘기를 쓰려고 했다. 특히 여성 장애인의 성욕은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성폭행 피해자, 혹은 성욕을 가지면 임신을 할 수 있으니 오히려 위험한 존재로 언급한다. 장애를 노려 접근하는 가해자도 있으니 현실적인 부분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적인 이야기를 하면 공격당한다’는 건 정당하지 않다.”

김지우 작가의 휠체어 . 포토그래퍼 유흐름

김지우 작가의 휠체어 . 포토그래퍼 유흐름

-여성 장애인으로서의 경험을 가시화하는 건 어떤 의미인가.

“생리나 성교육을 비롯해 딸이 엄마한테 배우는 것들이 있지 않나. 내 경우엔 유전이 아닌 뇌성마비로 장애인이 됐기 때문에 엄마와 나의 몸이 다르다. 그러다 보니 이런 걸 좀 자세하게 알려주는 언니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특히 장애인에게 ‘초대받았다’는 느낌을 주면 좋겠다. 나와 닮은 이들이 내가 느꼈던 결핍을 해소할 수 있는 글이 되길 바란다.”

-유튜브 영상과 이번 책을 통해 휠체어를 달리 보게 됐다. ‘휠체어 꾸미기(휠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14년 넘게 타고 있지만 휠체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사진을 찍을 때도 벽을 잡고 서거나 벤치에 앉는 식으로 소위 ‘장애인처럼 안 보이게’ 찍으려 노력했던 적도 있었다. 특히 좋아하는 사람 앞에선 휠체어를 타면 소극적이고 매력적이지 않아 보이리라는 생각 때문에 걷는 게 더 아찔한데도 걸으려고 했다. 열여덟 살에 ‘휠체어 꾸미지 말라는 법 있나?’ 영상에서 처음으로 캐리어 스티커를 사다 휠체어에 붙였다. 느낌이 되게 좋았다. 요즘 ‘다이어리 꾸미기(다꾸)’, ‘폴라로이드 사진 꾸미기(폴꾸)’를 많이 하지 않나. 내 물건을 내가 아끼는 느낌으로 애착을 형성하는 것이다. ‘왜 휠체어에는 그러지 못했을까’ 싶었다. 없으면 외출을 못 할 정도로 스마트폰보다 가까이 있는 존잰데 왜 얘를 지워버리려고 했을까. 스티커를 붙이니 애착이 생겼다. 사람들이 쳐다보면 ‘내 휠체어가 좀 신기하긴 하지’ 생각할 수도 있고, ‘스티커가 멋있다’는 반응을 접하기도 했다.”

하이틴 악녀 콘셉트로 촬영한 지난해 11월의 ‘이달의 휠체어’ 프로젝트, 포토그래퍼 장모리

하이틴 악녀 콘셉트로 촬영한 지난해 11월의 ‘이달의 휠체어’ 프로젝트, 포토그래퍼 장모리

-‘이달의 휠체어’ 프로젝트가 인상적이다. 한복, 웨딩드레스, 하이틴 여주인공 콘셉트가 재미있었다.

“‘휠꾸’를 콘텐츠로 기획하며 ‘할 거면 제대로 꾸미자’는 생각에 장기 프로젝트로 시작했다. 지난해 9월부터 매달 하고 있다. 물론 스스로도 재밌지만, 휠체어 타는 분들의 ‘우리도 좀 해볼까’란 반응이 인상적이다. 장애인들이 욕심을 내봤으면 좋겠다. 무작정 스스로 시작하긴 쉽지 않으니, 내 모습을 통해 ‘나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다. 특히 휠체어 가드를 예쁘게 만들어 달고 다니면 기분이 좋다. 옷을 갈아입듯이 ‘오늘은 이걸 껴볼까’ 하고 바꾸는 것도 재밌다.”

-휠체어 패션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콘텐츠인가.

“휠체어도 디자인을 거친 물건이지만 장애보조기기란 이유로 기능적으로만 보이기 쉽다. 삶에서 휠체어를 어떻게 패션으로 치환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휠체어가 3대 있는데, 기능이 중요하지 않은 날이라면 원피스를 입고 가볍고 슬림한 걸 고르고, 키가 커보이고 싶은 날에는 높은 걸 타기도 한다. 물론 처음부터 휠체어를 패션으로 봤던 건 아니다. 예전에 화보를 처음 찍었을 때 에디터에게 ‘어떤 휠체어를 타고 갈까요’라고 물었더니 그분이 진지하게 ‘(보고 고를 수 있도록)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고 했다. 사실 ‘편한 걸 타고 오라’고 할 줄 알았는데 그 덕에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하는 휠체어가 다시 보이게 됐다. 휠체어가 화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구나 깨달았다.”

-앞으로 어떤 콘텐츠를 하고 싶나.

“나라는 사람을 브랜딩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장애인이 다양한 장소에, 다양한 이름으로 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 내가 그렇게 할 것이다. 그걸 전시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이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끔. 앞으로 회사에 취직하든, 여행을 가든, 교환학생을 가든 그 속에서 아등바등 사는 모습을 기록하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겐 의미 있는 영상이 될 것이다.”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콘셉트로 촬영한 지난해 10월의 휠체어 . 포토그래퍼 장모리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콘셉트로 촬영한 지난해 10월의 휠체어 . 포토그래퍼 장모리

-‘휠꾸’는 어떻게 이어갈 예정인가.

“‘휠꾸’는 단순히 휠체어의 물리적 외형만 바꾸는 게 아니라 ‘나는 이걸 타고 다녀야 하는 사람이구나’로 내면화되고, 이를 통해 당당함이 생길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휠꾸’를 콘텐츠로 소비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만들고 싶다. 다만 휠체어 가드가 다 맞춤제작이다 보니 비싸다. 그래서 아동을 모아 휠꾸를 쉽게 해보는 마당을 기획했다. 나부터가 일반학교를 다니며 ‘왜 나는 다르지’란 생각을 했기 때문에 특히 아동들에게 관심이 갔다. 디자이너가 시각화를 해주면 아이들이 스티커를 붙이고 그림을 그려 ‘나만의 휠체어’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휠체어가 사실 멋진 물건이다. 아직 할 게 많다.”

-직접 연극을 꾸려본 경험도 있지 않나. 최근엔 장애를 가진 배우가 드라마에 나오기도 했다.

“(연극이나 드라마에서) 서사가 없는 장애인이 나와야 한다. 항상 장애를 가진 배역이 등장하려면 이유가 있어야 했다. 남자 주인공이 회사 본부장일 땐 이유가 없어도 되지만, 장애인 캐릭터는 슬픈 과거나 주인공의 아픈 손가락이라든가 하는 서사가 아니면 등장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것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있는, 서사가 없는 장애인 캐릭터를 원한다. 사람들이 장애인을 그렇게 다루는 미디어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일상에서) 자꾸 장애인의 사연과 서사를 궁금해한다. ‘왜 장애인이 됐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다. 그 이유가 극적이고 상세할수록 열광하는 것 같다. 장애인한테서는 늘 ‘현재’가 아니라 장애가 낳을 ‘미래’나 장애인이 된 순간의 ‘과거’를 보는 경향이 있다.”

-크리에이터로서 방송 출연, 라디오 진행, 유튜브 같은 활동을 하면서 가장 뿌듯할 때는 언제인가.

“장애가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제일 반갑다. 구독자 중 사고가 나 장애인이 된 분이 있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다른 몸이 되면 당황스럽고 무서운 게 당연하다. 그분이 ‘만약 구르님을 몰랐다면 이 상황이 너무 불행하고 절망스러웠을 것 같다. 구르님을 안 덕에 장애인이 된다고 그렇게까지 세상이 무너지는 건 아니란 걸 알게 돼서 잘 회복하고 있다’고 전해주었다. 뿌듯하기도 했고, 내 영상에서 힘을 얻었다니 위로가 됐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han.kr

TOP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