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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경향신문-국제앰네스티 공동 기획 ‘그냥 결혼이야’

③ ‘혼인평등’ 변화를 만드는 인권·시민단체 사람들

국제 엠네스티 한국지부 <내 친구의 결혼식> 사이트

국제 엠네스티 한국지부 <내 친구의 결혼식> 사이트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가족 구성에 제약을 받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변화시키는 데에는 한국·대만·일본의 인권·시민단체들의 역할이 컸다. 경향신문은 각국의 인권·시민단체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성소수자 권리 확대를 위해 어떤 활동을 했는지, 상대적으로 속도가 더딘 한국이 나아갈 방법은 무엇인지 들어봤다. 리싱 대만 성소수자가족권익촉진회 활동가와 추이링 국제앰네스티 대만지부 사무처장, 치엔치에 대만 반려자권익추진연맹 사무처장은 지난달 27~29일 만났고 나머지 단체 활동가는 e메일과 전화로 인터뷰했다.

대만 “예스라고 말해줄래요?”

리싱 대만 성소수자가족권익촉진회 활동가. 최유진 PD

리싱 대만 성소수자가족권익촉진회 활동가. 최유진 PD

대만에선 2016년 11월 5개의 여성·성소수자 운동 단체가 모여 ‘무지개평등권빅플랫폼’을 결성했다. 같은 해 세계인권의 날(12월10일) 25만 명이 모이는 결혼 평등권 콘서트를 열었다. 2017년 5월 24일 사법원(헌법재판소)이 혼인을 남녀로 제한하는 현행 민법 규정이 ‘위헌’이라는 해석을 내놓자 이들은 2만 명의 지지자들과 함께 입법원(국회) 앞을 찾아 “동성 결혼 합법화를 위한 법안을 신속히 처리하라”고 주장했다. 당시 이 활동을 함께 한 리싱 대만 성소수자가족권익촉진회 활동가는 “시민들의 요구가 정치인들에게 닿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추이링 국제앰네스티 대만지부 사무처장. 최유진 PD

추이링 국제앰네스티 대만지부 사무처장. 최유진 PD

국제앰네스티 대만지부는 2017년 ‘대만, ‘예스(yes)’라고 말해줄래요?’라는 이름의 캠페인을 벌여 전 세계 40여 개국으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추이링 대만지부 사무처장은 “동성 결혼 합법화는 더 많은 사람이 결혼을 선택하고 가족을 구성할 자유를 갖게 했다”며 “‘평등권’은 많은 국가의 헌법에서 기본적인 원칙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대만지부는 올해 2월 한국 법원이 동성 커플도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 판결에 주목하고 있다”며 “시민들은 이 판결을 근거로 대사관과 국제단체 연대 등을 통해 한국 정부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치엔치에 대만 반려자권익추진연맹 사무처장. 최유진 PD

치엔치에 대만 반려자권익추진연맹 사무처장. 최유진 PD

2018년 동성 결혼에 반대하는 단체들에 의해 국민투표가 있었을 때도 단체들은 언론을 통해 공공 변론에 나서며 성소수자들 곁에 섰다. 그 결과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고 올해 1월 초국적 동성결혼도 가능해졌지만 중국은 제외된다. 치엔치에 대만 반려자권익추진연맹 사무처장은 “이성 간에는 문제 되지 않는데 동성 간엔 제한을 두는 것은 앞으로 해소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대만과 중국 동성 커플들의 소송을 맡아 진행 중이다.

일본 “모두를 위한 결혼”

일본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일본 공익 사단법인 ‘모두를 위한 결혼’ 소송 법률팀에 속해 있는 가토 다케하루 변호사는 2021년 삿포로 지방재판소(지방법원)에서 ‘동성 결혼 금지 위헌’ 판결을 이끌어냈다. 가토 변호사는 법원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면서 법의 위법성을 주장했다. 위헌 판결이 나오던 날 가토 변호사는 “그간 무시당해왔던 성소수자의 존재를 법원이 받아들이고 답을 내놓았다는 데에 감격이 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고 소감을 말했다.

가토 다케하루 변호사(사진 왼쪽), 히구치 도시키 전 일본지부 캠페이너. 본인 제공

가토 다케하루 변호사(사진 왼쪽), 히구치 도시키 전 일본지부 캠페이너. 본인 제공

삿포로 지방재판소의 ‘위헌’ 판결 이후 법원 판결도 잇따르고 있다. 가토 변호사는 “5곳의 (지방)법원 중 4곳에서 위헌 혹은 위헌상태 판결이 나온 것은 법원이 국회에 조속한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동성결혼 합법화를 위해서는 대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국회의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야당뿐 아니라 자민당 의원들과도 협력해서 오는 2025년까지 동성결혼 합법화를 지지하는 국회의원이 과반수가 될 수 있도록 캠페인을 전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제앰네스티 일본지부에선 청년 세대 목소리를 공론화하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2021년 18~25세 청년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80%가 ‘성소수자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설문조사를 기획한 히구치 도시키 전 일본지부 캠페이너는 “차별금지법 통과를 무산시킨 자민당에 대한 청년 세대의 우려를 국회 회기 중에 부각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단체들은 유권자들이 국회의원들의 입장을 직접 찾아볼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그를 통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는 노력도 하고 있다. 대만의 ‘무지개평등권빅플랫폼’은 내년 대만 총통 선거를 앞두고 ‘나와 맞는 후보자 찾기’ 서비스를 제공한다. 홈페이지에서 국회의원이 젠더 문제에 어떤 입장을 드러냈는지 직접 검색해볼 수 있다. 일본의 ‘모두를 위한 결혼’은 “찬성 국회의원을 늘리자”라는 코너를 통해 동성 결혼에 대해 국회의원들과 면담한 내용을 공유한다. 유권자들은 이와 같은 사이트들을 통해 자신의 투표권을 어떻게 행사할지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

한국 “그냥 결혼이야”

명희수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캠페이너(사진 왼쪽), 류민희 변호사. 본인 제공

명희수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캠페이너(사진 왼쪽), 류민희 변호사. 본인 제공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혼인 평등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촉구하는 디지털 캠페인 ‘내 친구의 결혼식: 그냥 결혼이야’를 지난 7월 시작했다. 참여자가 디지털상에서 자신만의 하객 캐릭터를 꾸미고 가상 동성 부부의 결혼식에 참여하는 체험형 캠페인이다. 참여자는 캠페인에 참여 후 자신이 직접 꾸민 캐릭터 이미지를 다운받을 수 있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며 연대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명희수 한국지부 캠페이너는 “캠페인을 통해 동성 커플이 혼인할 수 없는 건 명백한 차별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이러한 차별을 종식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한국에선 민법상 동성 간 혼인을 금지하는 법 조항은 없지만 관습적인 차별로 혼인신고가 수리되지 않고 있다. 명희수 캠페이너는 “동성간의 혼인신고가 수리되지 않는 것은 행정적 차별”이라며 “이를 위헌이라고 확인하는 사법적 절차나 동성 간 혼인이 성립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할 수 있는 입법적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에선 내년부터 ‘혼인평등연대’와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을 중심으로 동성 커플의 혼인 신고 불수리 처분에 대한 불복 소송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호림 혼인평등연대 집행위원장은 “내년 하반기쯤 여러 동성 커플들이 함께 불복 소송을 진행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소수자들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다. 지난 2월 동성 커플에게도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을 이끌어낸 류민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일부 정치인들은 변화의 흐름을 가로막고 있는데 유권자로서 정치인들에게 ‘대세’를 거스르는 게 좋지 않다는 메시지를 줄 필요가 있다”며 “우리는 계속 더 많은 대화가 가능하도록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yu@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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