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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청년 여성 노동자들은 ‘일’을 독립적인 인간으로 살기 위한 수단이며,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는 활동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일을 인생의 ‘디폴트(기본값)’라고 생각하며, 결혼과 출산은 삶의 부수적인 부분이라고 여겼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이 같은 결과가 담긴 90년대생 여성노동자 4632명에 대한 온라인 설문조사와 19명에 대한 심층 인터뷰 결과를 16일 발표했다. 인터뷰 등은 저임금 및 단기 고용관계를 맺고 있는 2차 노동시장 노동자를 중심으로 했다. 코로나19 이후 청년 여성들의 취업시장 배제가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90년대생 여성 노동자의 일을 주제로 광범위한 조사가 이뤄진 것은 처음이다.

90년대생 여성 노동자 "우리는 일에 진심이다"[플랫]

“쌍팔년도 노동 환경 힘들다” 여성들의 이직 사유



응답자 중 현재 일을 하고 있다고 답한 이들의 비율은 80.2%(3715명)였다. 최근 3개월 평균 소득은 200만~250만원이 33.4%로 가장 많았고, 250만~300만원(19.9%), 150만~200만원(18.7%) 순이었다. 학력을 살펴보면, 4·5년제 대학 재학·졸업이 68.9%로 가장 많았고, 대학원 재학 이상이 6.6%, 고졸 이하가 5.7% 순이었다.

일 경험이 있다고 답한 4522명에게 채용 과정에서 경험했던 문제점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는 ‘급여를 공개하지 않는 채용 공고’가 문제라는 답변이 17.2%(1471명)로 가장 높았다. 모집 과정에서 성별 제한을 두지 않지만 ‘여성은 거의 뽑지 않는 관행’(16.8%)이 뒤를 이었다.

그래픽 이아름 기자

그래픽 이아름 기자

심층 인터뷰에 참여한 이들도 근무 시 어려움으로 조직 내의 구시대적인 성차별적 문화를 꼽았다. 마케팅 회사에서 근무했다는 한 응답자는 “거래처 사장님이 음료를 사다 주시면 무조건 동영상을 찍어야 돼요. 막 이렇게 흔들면서 ‘사장님 감사합니다~’ 이걸 해야 하는 거예요. 너무 하기 싫은데”라며 여직원으로서 감정노동을 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답하기도 했다. 회식 때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는 응답자도 있었다. 남성적 조직문화는 청년 여성 노동자들이 이직을 결심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일은 ‘디폴트’, 결혼·육아는 ‘물음표’



인터뷰 응답자 상당수가 결혼이나 육아보다 일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결혼이나 육아가 직업이나 경력쌓기에 장애로 작용하는 것을 염려하는 이들이 다수였다. 한 응답자는 “나 하나 살기도 힘든데 굳이 다른 사람이랑 같이 살아야 되나 싶은 마음이 크다”고 했다. 한 면접 참여자는 90년대생을 “발버둥 치는 세대”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들은 코로나19 이후 경제 상황이 어려워졌을 때도 구직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일 경험이 있는 이들 중 이직을 해봤다는 응답률은 67.8%(3064명)로 10명 중 7명이 이직 경험이 있었다. 이직한 직종의 고용형태별로 보면 정규직 경험이 48.4%로 가장 많았으나, 시간제 아르바이트(20.1%)와 기간제(16.2%) 경험자도 상당수 있었다.

코로나19가 여성이 많이 근무하는 여행 및 서비스업에 타격을 주면서 이들 직종에 지원했거나 근무했던 이들이 큰 피해를 봤다. 승무원 준비를 했다는 응답자도 “코로나 사태로 채용이 없어졌다. 식음료 서비스업에 취업했으나, 직장내 괴롭힘 등으로 근무처를 한 번 옮기고 일이 힘들어 퇴사했다. 현재 공기업이나 공무원 준비를 마음먹고 있다”고 답했다. 한 응답자는 “코로나 상황에서 이직을 자주 하면서 극단적 선택을 생각할 만큼 힘들었던 적이 많았다”고 응답했다.

90년대생 여성노동자들이 자신이 속해있다고 생각하는 계층을 살펴보면 유아기·아동기, 청소년기부터 현재까지 모든 시기에서 중산층보다 낮다고 대답한 사람이 50%를 넘었다. 두 명 중 한 명은 자신의 계층을 하위층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 지원을 받은 경험은 4632명 중 47.2%가 있다고 했다. 취업지원이 21.0%로 가장 높았고 코로나19 대책지원이 19.4%였다. 지원에 만족한다는 응답이 과반수로 높았으나 전혀 만족하지 않는다고 한 이들도 35.5% 있었다. 한 응답자는 “노동환경의 근본적 개선 없는 지엽적인 정책 및 협소한 지원 범위” 등에 불만족한다면서 “노동법 관리감독 및 위반 시 처벌 강화 등 국가에서 기업이 법을 잘 지키는지 감시하고 시행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성별 차별 없이 면접, 취업, 연봉 등에서 동일하게 대우하는 정책이 더 활성화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설문 분석을 맡은 박선영 중앙대 중앙사회학연구소 연구원은 “청년 여성 노동자들은 일에 대해 ‘진심’이었다”면서 “채용 성차별에 대한 분노가 굉장히 높다. 채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성차별적 관행들을 강력하게 단속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적 의지와 집행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고희진 기자 gojin@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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