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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성폭력 피해자의 증언 영상을 재판 증거로 쓸 수 있도록 한 법률 조항이 헌법에 저촉된다고 헌법재판소가 판단했다. 반복된 피해 진술로 인한 2차 피해를 막으려고 생긴 이 조항이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헌재의 이번 결정으로 영상진술 녹화자료의 증거능력이 제한되면 아동 성폭력 피해자도 법정에서 적어도 한 차례는 반대 신문을 받아야 하는데, 반대 신문을 이해할 수 없는 아동 피해자가 많은 데다 반대 신문 과정에서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헌재는 23일 A씨가 옛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제30조 6항이 반대신문권을 박탈한다며 낸 헌법소원 심판 청구 사건에서 재판관 6대3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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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교사이던 A씨는 2010~2011년 8세인 제자를 수차례 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2018년 징역 6년과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 명령이 확정됐다. A씨는 피해자의 증인신문 없이 진술 영상이 증거로 사용된 것은 위헌이라고 주장해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후 직접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재의 위헌 결정으로 A씨는 재심을 청구할 여지가 생겼다. 재심이 열리면 위헌 결정 취지에 따라 피해 아동에 대한 반대 신문도 이뤄질 수 있다.

이번 심판의 쟁점은 경험자가 법원에서 직접 하지 않은 진술의 증거 능력을 배제하는 이른바 ‘전문법칙’에 아동 성범죄 피해자를 예외로 두는 것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였다. 수사단계에서 작성한 피해 진술서 등은 피해자가 법정에 출석해 자신이 말한대로 진술서가 작성됐다고 밝히는 ‘진정성립’을 하면 증거로 쓰일 수 있다.

그러나 아동·장애인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수사·재판 단계에서 반복적으로 진술하면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피해 진술을 영상으로 녹화하는 과정에 동석한 신뢰관계인이 ‘진정성립’을 하면 해당 증언 영상을 증거로 쓸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만들어졌다.

헌재 다수의견은 이 조항이 중대한 공익인 아동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합성은 인정되지만 피고인의 방어권 제한의 정도가 중대하고 2차 피해를 방지할 다른 대안이 존재하기 때문에 법익의 균형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다수의견은 “미성년 피해자 진술이 사건의 핵심 증거인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 조항은 주요 진술증거의 왜곡이나 오류를 탄핵할 반대신문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고 이를 대체할 수단도 마련하고 있지 못하다”며 “피고인은 자신이 탄핵하지 못한 진술증거에 의해 유죄를 인정받을 위험에 놓이게 된다”고 했다.

피해자가 받게 될 2차 피해에 대해서는 “증거보전절차를 적극적으로 실시해 수사 초기단계에서부터 피고인에게 반대신문 기회를 부여하면서 반복진술로 인한 2차 피해를 방지할 수 있다”며 “2차 피해를 고려해 여러 증인지원제도를 마련하고 있고, (반대신문이 이뤄져도) 재판장이 증인 보호를 위한 소송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이선애·이영진·이미선 재판관은 반대의견을 통해 법정에서의 진술은 미성년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발생시킬 수 있고, 유도신문이나 암시적 질문 등 부적절한 신문방법에 의해 기억과 진술이 왜곡될 가능성이 커 실체적 진실 발견과 무관하게 정신적 충격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 조항에 따라 촬영·보존된 영상물은 진술의 취득과정 전체와 미성년 피해자의 표정·어조 등 ‘태도증거’를 확연히 드러낸다”며 “영상물에 수록된 진술은 수사 초기의 생생한 기억속에서 이뤄진 것으로 허위의 개입 여지가 적곡 신용성이 정화적으로 보장된다”고 했다.

📌 5일 후면 도래할 ‘무죄공화국’

증거보전절차 등을 통한 증인신문이 가능하다는 다수의견에 대해서는 “피고인의 증거부동의와 관련없이 일률적으로 미성년 피해자를 사건 초기에 반대신문에 노출시킨다”며 “2차 피해를 방지하지는 못하는 점 등 이 조항과 동일한 정도로 입법목적에 기여하는 대안으로 보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오선희 변호사는 “헌재 결정은 법정에서 반대신문을 이해할 수 있는 성인에 준하는 아동 청소년만을 피해자로 상정한 것”이라며 “연령이 어린 대다수 아동은 법정에서 증언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진술을 영상 녹화할 때도 사전에 관계를 쌓지 않으면 입을 열지 않는 아동도 다수다. 헌재 결정으로 대다수 아동 청소년 성폭력 사건이 영상 진술을 증거로 인정받지 못해 줄줄이 무죄가 나올 게 우려된다”고 했다.

허민숙 여성학자는 “영상진술 녹화자료의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으면 결국 피해자가 법정에 수 차례 출석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것”이라며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고 사람들 앞에서 그 경험을 말하는 것은 성인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인데 미성년자에게 그런 경험이 어떤 충격을 줄 지 심히 우려스럽다”고 했다.


전현진 기자 jjin23@khan.kr
이보라 기자 purple@khan.kr
박용필 기자 phil@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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