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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넥슨 게임 홍보영상에 삽입된 이미지를 두고 게임업계 내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이 확산하고 있다. 일부 이용자들은 해당 이미지를 그린 직원을 해고하라고 압박하는가 하면 직원들 신상정보 일부는 온라인에 공개됐다. 전문가들은 ‘낙인찍기→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털이→남성 이용자들의 공격→게임회사의 사과’ 패턴을 답습한 전형적인 ‘게임업계 백래시’라고 분석했다. 창작자의 자기검열과 이용자 확장 제한으로 게임산업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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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발단은 인터넷 지난 25일 저녁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한 게시물이었다. 넥슨은 앞서 23일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여성 캐릭터 엔젤릭버스터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게임 홍보 애니메이션을 공개했다. 커뮤니티 글 게시자는 이 캐릭터가 움직이는 장면을 캡처한 뒤, 손 모양이 ‘집게 손 모양’이라며 ‘남성혐오’ 의혹을 제기했다.

낙인은 신상털이와 공격으로 이어졌다.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해당 캐릭터를 그린 외주업체 직원의 A씨의 SNS를 찾아낸 뒤 이 계정에 페미니즘 지지 게시물이 올라왔었다며 “고의적 남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A씨가 과거 그린 캐릭터들의 움직임을 0.1초 프레임 단위로 잘라 ‘집게 손가락’ 모양과 유사한 그림을 찾아낸 뒤 넥슨 측에 집단 항의했다.

넥슨의 게임 홍보영상에 남성혐오성 표현이 포함돼 있다는 일부 유저들의 문제제기가 이어지자 25일 넥슨은 해당 영상을 비공개하고 사과문을 올렸다. 사진은 영상 내 문제가 된 장면 일부

넥슨의 게임 홍보영상에 남성혐오성 표현이 포함돼 있다는 일부 유저들의 문제제기가 이어지자 25일 넥슨은 해당 영상을 비공개하고 사과문을 올렸다. 사진은 영상 내 문제가 된 장면 일부

민원이 이어지자 넥슨은 “홍보물 제작 과정에서 세심하게 검토하지 못해 심려를 끼쳐드린 점 사과드린다”며 해당 영상을 비공개 처리했다. 논란이 된 지 약 4시간 만에 취해진 조처였다. 외주업체 측은 “의도하고 넣은 동작은 아니다”면서 “해당 스태프는 키 프레임을 작업하는 원화 애니메이터로서 모든 작업에 참여하나 동작 하나하나를 컨트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넥슨 측은“타인에 대한 혐오를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문화와, 그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이 메이플을 유린하도록 절대로 허락하지 않겠다”며 강력 대응을 예고했다.

메이플스토리 홈페이지 갈무리

메이플스토리 홈페이지 갈무리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게임업계의 ‘패턴화된 백래시’라고 분석했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27일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를 색출 대상으로 보고 특정한 손가락 모양이 발견되면 의심의 여지도 없이 낙인을 찍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면서 “남초 커뮤니티의 안티 페미니즘 정서를 통해 세상을 협소하게 해석하고, 이를 권위 있는 여러 기관에서 인준하고 승인하는 방식을 통해 안티 페미니즘이 이 세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큰 위력이라고 인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윤김 교수는 “안산 선수 때처럼 개인 SNS에 페미니즘 글이 올라왔다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매장하려는 일종의 사냥”이라며 “이 경우 회사 차원에서도 페미니즘과 관련해 오해를 살 만한 것들은 모두 검열의 대상과 리스크의 대상이 된다”고 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손가락 모양과 같은 극소수의 상징을 공론장으로 가지고 오며 ‘남성혐오’의 사인으로 읽어내는 것 자체가 사회 문화적인 백래시”라면서 “개별 사안이 아니고 계속 되풀이된다는 것이 문제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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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백래시는 생존권 위협으로 이어진다. 신남성연대는 전날 유튜브 커뮤니티에 “해당 페미 직원 해고 및 확실한 법적 조치를 하지 않을 시 사무실 앞에서 한 달 내내 텐트 치고 농성은 물론 단식투쟁 삭발까지 한다”는 게시물을 올렸다가 삭제했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도 이번 사태로 페미니스트 직원을 색출해 게임 업계에서 퇴출해야 한다는 취지의 게시물이 다수 올라오고 있다.

신남성연대 유튜브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글.

신남성연대 유튜브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글.

왜 이런 백래시가 유독 게임업계에서 두드러지는 걸까. 신 교수는 “게임산업에서 주요 유저, 소비자층을 남성으로 설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게임은 남성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유저들 사이에 굳어졌고, 페미니스트를 ‘처벌’하면서 권력을 확인하고 있다는 게 신 교수 분석이다. “게임 주요 소비자는 남성이니 건드리지 말라는 집단적인 시위”라는 것이다. 김설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주 고객층이 남성이다 보니 남초 커뮤니티 유저들의 집단행동이 성과를 쌓아가며 매출에 타격 주고 있다”면서 “노동권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꼬리자르기가 반복되고 있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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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의 이번 조치가 이례적으로 신속했다는 점도 게임업계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여실히 보여준다. 윤김 교수는 “게임업계에서 여성 캐릭터가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여성 비하적인 측면이 있다고 문제 제기를 하면 이렇게 빠르게 대응하는 경우 거의 없다”면서 “유저들이 구축해놓은 안티 페미니즘 정서에 반기를 들지 않고, 기존 세계관을 메이플스토리가 지킬 것이라는 메시지 전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행태가 창작자들의 자기검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는 “SNS의 파급력이라거나 젠더 이슈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 자체가 너무 뜨거운 상황이라 창작자는 표현의 자유를 다소 침해받더라도 자사 게임에 충격이 가지 않게 하기 위한 안간힘을 쓰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경영진은 게이머들의 목소리를 묵과할 수 없다”면서 “(창작자의) 자기검열이 계속되는 점이 아쉽다”고 했다.

이런 행태로 인해 게임 이용자가 제한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신 교수는 “게임을 남성이 독점적으로 점유하려는 의식이 존재하는데 이는 우리나라 게임산업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여성 유저들이 많아져야 (게임사가) 다양한 소비자에 맞는 다양한 게임을 개발할 수 있고 해외에서도 경쟁력이 생긴다”면서 “이번 사태는 접근권에 대한 장애를 만듦과 동시에 게임 산업의 발전에도 불행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게임업계의 반복되는 백래시를 ‘사상검증’이라는 용어로 규정하면 안 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신 교수는 “검증이라는 표현이 남성 유저들의 움직임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읽힐 수 있다”면서 “여성에 대한 공격이라고 하는 게 정확하다”고 했다.

▼ 이홍근 기자 redroot@khan.kr · 정효진 기자 hoho@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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