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홍규 소설가

지금은 보기 힘든 풍경 가운데 하나가 등짐을 지고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며 싸구려 잡화를 팔던 행상이다. 행상이 모두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자기 덩치의 두 배는 되는 등짐을 지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학비를 벌던 앳된 대학생들은 이제 없는 듯하다.

[문화와 삶]환대

내 기억으로는 그런 대학생들이 내 고향 마을 같은 촌구석까지 찾아다니며 행상을 하던 것도 서너 해가 절정이었다. 정말 대학생이어서 그랬는지 처음 잡화 행상을 보았던 것도 방학 중이었던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바지게보다 커다란 등짐을 지고 성큼 마당으로 들어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날은 어른이 없었던 터라 등짐 행상은 아무것도 팔지 못하고 돌아갔는데 주로 플라스틱으로 만든 잡화들-빨래집게, 옷걸이, 바구니, 바가지, 파리채 등등을 교묘하게 쌓고 엮고 매단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그 행상이 어느 집의 늙수그레한 가장이 아니라 앳된 대학생이라는 사실 자체가 이채로울 수밖에 없었다.

마을에 겨우 한 명쯤 있을까 말까 할 만큼 대학생이 귀한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인 밤 마실 자리에서 놀라운 이야기를 얻어 들었다. 내가 보았던 바로 그 대학생 행상들 중에 잡놈들이 있다는 거였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돈 될 만한 걸 훔쳐가는 좀도둑 같은 녀석도 있고 대학생 행세를 하는 가짜도 있다는 거였다. 아주머니들은 한결같이 몹쓸 놈들, 썩을 놈들, 호랭이 물어갈 놈들 어쩌구 하며 탄식을 했고 그러면서 한 번씩 나를 힐끔거리기도 했는데 장차 저 녀석도 자라 그런 잡놈이 될 기미가 있는지 탐색이라도 하는 것 같아 괜히 열없고 섬뜩하기도 한 거였다. 나는 속으로 대학생 행상의 정체를 내 손으로 까발린 뒤 내게 씌워진 혐의를 벗어나겠다고 다짐했다.

얼마 뒤 여전히 무더운 한낮에 대학생 행상이 마당에 들어섰다. 그날은 어머니가 있었던 터라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어머니가 종종 내게 그러듯이 그 가짜 대학생에게 부지깽이를 휘두를 거라 기대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 더운 날 무슨 고생이냐며 차가운 물을 한 그릇 가져다주고 마당을 가로지른 빨랫줄에 남아도는 게 빨래집게였는데도 그걸 한 줄이나 사주고는 보냈다. 나는 그 행상이 뭐라도 집어가지 않을까 감시하며 눈을 부릅뜬 채 어머니의 이 모든 배신행위를 지켜보았다. 대학생 행상이 가고 난 뒤 나는 어머니를 힐난했다. 대학생 아닐 수도 있다면서? 그러자 어머니는 흔흔히 웃으며 말했다. 대학생 아니면 어떠냐? 이 더운 날 땀 뻘뻘 흘리면서 한 푼이라도 벌어보겠다고 등짐 지고 다니는 젊은인데…….

여전히 입이 댓 발 나왔던 나는 마을 들머리 정자에 갔다가 거기에서 쉬고 있는 대학생 행상을 보았다. 그이는 환히 웃으며 몇 살이냐, 몇 학년이냐, 방학숙제는 하고 있냐 시시콜콜 묻고는 안녕하세요를 영어로 해 봐라, 근의 공식을 말해봐라 등등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까지 하더니 앞날이 캄캄해도 용기를 잃으면 안된다는 식의 조언을 하며 알사탕 하나를 쥐여주고 떠나갔다. 어려운 질문 탓이 아니라 내가 그이를 환대하지 않았음에도 그이가 너무나 따뜻하고 다정하게 말해준 까닭에 내 얼굴이 달아올랐다. 낯선 사람의 환대를 받았음에도 내 마음은 불편했다. 그처럼 환대받을 자격이 없다고 자책해서였으리라. 물론 그이가 어머니의 환대를 기억하고 내게 살갑게 굴었는지도 모른다. 대학생 행상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시선들을 모르지 않았을 테고 가끔은 정말 냉대도 당해보았을 테고 모욕도 받았겠지. 그이에게 건네진 한 대접의 냉수는 그냥 냉수가 아니라 그 모든 의심과 편견을 넘어선 이해와 공감이 담긴 환대의 한 형식이었을 테고 어쩌면 그이 역시 마음이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데리다가 언급했던 절대적 환대가 말처럼 쉬우리라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한 가지만은 분명하지 않을까. 환대하지 않는 사람 역시 어디에서도 누구에게도 환대받지 못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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