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개막한 ‘2020 도쿄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 가운데 여성 비율은 48.5%입니다. 여성 선수의 올림픽 출전이 처음으로 허용됐던 것은 1900년 파리 올림픽입니다. 당시 여성 선수 비율이 2.1%였습니다. 남성과 여성의 성비가 1 대 1 균형을 이루는 데 120년이 걸린 셈입니다. 기울어진 스포츠계의 운동장에서도 선수들이 끊임없이 도전한 결과일 것입니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최선을 다해 경기를 치르고 있을 이들을 응원하며, 플랫팀이 주목할 만한 여성 선수들 소식을 정리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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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여홍철이 ‘여서정의 아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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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서정이 입을 꽉 다문채 달리기 시작했다. 1차시기는 자신의 이름을 딴 고유기술 ‘여서정’이었다. 힘차게 구른 뒤 앞짚고, 25년전 아버지처럼, 몸을 띄워올렸다. 손을 모아 비튼 뒤 두 발로 내렸다. 25년전 그때와 달리 여서정의 발은 움직이지 않았다. 전광판에 점수 15.333이 떴다. 해설자로 마이크 앞에 선 아버지는 “아아아 서정아, 너무 잘했어요. 착지도 너무 완벽했어요” 라고 외쳤다.
여서정은 1일 2020 도쿄올림픽 체조 여자 도마 결승에서 3위에 올라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한국 여자 체조 역사상 첫 올림픽 메달이다. 그의 아버지인 여홍철 경기대 교수는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도마 은메달리스트, 어머니 김채은씨는 아시안게임 체조 메달리스트다. 여서정은 지난해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빠가 여홍철이라는 소리 되게 싫었다. 솔직히 나 열심히 했고, 못하지 않았는데 ‘누구 딸’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힘들었다”고 했다.
여서정은 아홉살에 체조를 시작했다. 이르게는 네 살쯤 시작해 십대 후반에 전성기가 시작되는 여자 기계체조에선 비교적 늦은 나이다. 부모님은 체조라는 길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힘들면 언제든 그만두라’고 했지만, 체조에 대한 딸의 근성과 욕심이 남달랐다. 여서정은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도마 1위에 오르면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는 2015년 레이디경향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장점으로 강한 정신력을 꼽았다. “실수를 하면 기분이 좋지 않지만 금세 잊어요. 보통 선수들이 평균대에서 한 번 떨어지면 그걸 마음에 두고 있다가 또 떨어지거든요. 그리고 그 기분을 다음 종목까지 이어나가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없어요.”
사실 체조는 그 어떤 운동보다 시합 중 긴장감이 높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한순간 실수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그늘에 대한 부담감, 시니어 데뷔 이후 찾아온 슬럼프, 첫 올림픽 출전이라는 긴장감을 모두 이겨내고 동메달을 목에 건 여서정은 경기 직후 “아빠가 ‘나는 은메달인데~’라고 놀릴 것 같다. 이제 아빠를 이겨야 겠다”고 웃었다.
📌[도쿄 라이브]25년 전 아빠와 달리 여서정 자기 기술 완벽하게 성공
📌[앙코르] 한국 최초 부녀 올림픽 메달리스트 여홍철·여서정 ‘예언 성지’ 2015년 화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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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김연경과 12명의 배구선수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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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혜선은 울었고, 박정아는 시크 그 자체, 김연경은 웃었다.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지난 31일 숙적 일본을 상대로 극적인 역전승을 만들어내며 8강 진출을 확정했다.
5세트 7-8에서 김연경의 공격이 블로킹 맞고 떨어졌을때 선수들의 발이 땅에 붙었다. 주장 김연경이 펄쩍 뛰며 화를 냈다. 김연경은 “그때 막 욕하고 그런 것 같은데?”라며 웃었다. 자세를 고쳐잡은 대표팀은 그때부터 분위기가 살았다. 김연경의 오픈 공격과 단독 블로킹 등이 나오면서 9-9 동점에 성공했다. 지독한 랠리 속 박정아의 공격이 연달아 성공하며 점수는 14-14까지 따라왔다. 박정아는 마지막 순간 네트싸움에서 공을 우리 코트 왼쪽으로 넘겨내며 승리를 확정했다.
선수들이 코트에서 어깨를 겯고 빙빙 돌았다. 라바리니 감독도 그 사이로 날아 들어왔다. 박정아는 “감독님이 같이 어울린 건 처음인 것 같다”고 말했다. 염혜선은 펑펑 울었다. “제가요, 일본을 오늘 처음 이겼어요”라며 말을 잇지 못하더니 “내가 V리그 우승하고도 안 울었다”고 웃었다. 박정아는 “우와 기분 날아갈 것 같다”면서도 “난 안 울었다”고 했다.
A조 3위로 조별리그 일정을 모두 마무리한 여자배구 대표팀은 이후 B조(이탈리아, 러시아대표팀, 미국, 터키)의 2위와 8강전에서 맞붙는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였던 2일 세르비아전에선 세트 스코어 0-3으로 패했다. 라바리니는 2세트 중반 주전 선수 대부분, 3세트부터는 김연경까지 빼면서 8강전을 대비한 체력 안배에 들어갔다.
📌 [도쿄 라이브] 숨고르기한 한국 女 배구, 세르비아에 패배…조 3위 8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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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원호, ‘졌잘싸’ 넘어 ‘희망’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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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농구의 2020년 도쿄 올림픽 도전은 3패로 끝이 났다. 하지만 세계적인 우승후보들에 뒤지지 않는 경기력으로 4년 후를 기약하게 했다. 특히 ‘쌍박’ 박지수(23·KB국민은행), 박지현(21·우리은행)을 비롯해 젊은 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한국이 올림픽에서 맞붙은 상대는 스페인(69-73), 캐나다(53-74), 세르비아(61-65)였다. 국제농구연맹(FIBA) 랭킹은 물론 피지컬과 상대 전적 등 객관적 전력이 우위에 있는 세계적인 강팀들이다. 20~30점차로 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한국 여자농구는 이런 시선을 보란듯이 뒤집으며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다. 박지수의 높이나 강이슬의 3점슛 능력은 세계 수준급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전주원 감독의 지도력도 이번 경기가 발견한 큰 수확이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4강 신화를 만들며 ‘한국 여자농구의 전설’로 불렸던 전 감독은 올해 1월 ‘혹사’ 논란으로 물러난 이문규 감독의 뒤를 이어 감독으로 부임했다. 어수선한 팀을 이끌어야 하는 중책을 맡았지만, 경기를 풀어가는 구상이나 팀을 하나로 뭉치게 한 리더십으로 좋은 결과를 만들었다.
한국 올림픽 역사상 단체 구기종목에서 여성이 사령탑을 맡은 것은 전 감독이 처음이다.
📌[도쿄올림픽]여자농구 전주원호 ‘졌잘싸’가 아닌 ‘희망’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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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육상 100m 휩쓴 자메이카 로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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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메이카가 여자 육상 100m 금·은·동메달을 모두 휩쓸었다. 자메이카의 메달 싹쓸이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처음이다.
1위인 일레인 톰슨(29)는 1일밤 열린 여자 육상 100m 결승에서 10초 61 기록을 세웠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플로렌스 그리피스 조이너(미국)가 세웠던 올림픽 기록(10초 62)를 0.01초 줄였다. 여자 선수 전체 기록으로는 조이너가 1988년 올림픽 선발대회에서 세웠던 10초49에 이어 역대 2번째다. 은메달은 셸리 앤 프레이저프라이스(36)가, 동메달은 셰리카 잭슨(27)이 각각 가져갔다.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100m와 200m를 동시 제패했던 톰슨은 발목 부상으로 인해 출전 자체가 불투명했다. 하지만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도 정상에 오르며 명실상부한 ‘에이스’로 거듭났다.
이번 올림픽은 ‘마미 로켓’ 프레이저프라이스에게도 의미가 깊다. 그는 예상치 못한 제왕절개로 원래 계획했던 5주가 아닌 10주의 출산휴가를 써야 했고, 트랙에 다시 서기까지 강도 높은 훈련을 이어갔다. 여성 육상선수에게 출산은 곧 은퇴를 의미하던 상황. 프레이저프라이스는 출산 후 2년도 안 돼 2019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육상 1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마미 로켓’의 탄생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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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균 기자 noda@khan.kr
조흥민 선임기자 dury129@khan.kr
이유진 기자 8823@khan.kr
심윤지 기자 sharpsim@kh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