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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고 뭉클한 ‘다시 만난 세대’…부디 ‘다정하게, 안녕히’

2009년 전후의 K팝 전성기를 추억하십니까? 알록달록한 컬러 스키니진을 옷장에 들인 적 있으십니까? 멜빵 바지만 보면 냅다 엉덩이를 흔들고 싶으십니까? ‘다시 만난 세계’의 전주를 들으면 눈물이 고이십니까? 일이 잘 안 될 때마다, “괜히 그랬겠어? 그랬겠어?!” 하고 발을 구르고 싶어지십니까?

그렇다면 2022년이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하게 여겨질 것이다. 올해 데뷔 15주년을 맞은 소녀시대와 카라가 각각 컴백하며 걸그룹 역사에 한 획을 그었기 때문이다.

2022년은 데뷔 15주년을 맞은 소녀시대와 카라가 각각 컴백하며 걸그룹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해로 기억될 것이다. 두 그룹의 역사는 여성 멤버들의 능력과 노력, 협업 그리고 팬들의 지지가 이뤄낸 것이기도 하다. RBW엔터테인먼트 ·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 크게보기

2022년은 데뷔 15주년을 맞은 소녀시대와 카라가 각각 컴백하며 걸그룹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해로 기억될 것이다. 두 그룹의 역사는 여성 멤버들의 능력과 노력, 협업 그리고 팬들의 지지가 이뤄낸 것이기도 하다. RBW엔터테인먼트 · SM엔터테인먼트 제공

2022년 8월5일, 소녀시대가 5년 만에 을 들고 ‘완전체’로 컴백했다. SM엔터테인먼트의 걸그룹 소녀시대는 2007년 8월5일 데뷔했다. 당시에는 낯설게 느껴지는 다인원 그룹이었는데, ‘꽃다발 효과’라거나 ‘예쁜 애 옆에 예쁜 애’ 같은 표현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만난 세계’로 데뷔한 소녀시대는 이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국민 걸그룹 반열에 올랐다. 원더걸스, 카라와 함께 걸그룹 전성시대를 이끈 소녀시대가 팬덤의 범위를 넓히면서, 이 무렵 ‘삼촌팬’ ‘이모팬’이라는 단어가 탄생했다.

언제나 최정상에 있었던 소녀시대지만, 멤버들이 20대 중반이 되면서부터 “이제 소녀가 아니야”라는 조롱 섞인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K팝은 어린 나이가 자본인 산업인데, 특히 걸그룹은 이러한 기준이 더 가혹하다. 공정거래위원회 표준계약서의 기준인 최장 7년을 넘으면 그룹 활동을 이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소녀시대 또한 몇몇 멤버들이 다른 기획사로 소속을 옮기고, 개인 활동에 매진하면서 오랫동안 단체 활동이 불투명했다.

회원들은 소녀시대로서의 정체성을 놓지 않고 활동을 이어가다가 15주년을 맞아 컴백하면서, 최장수 걸그룹의 역사를 새로 썼다. 이들은 숙련된 퍼포먼스와 팬들의 변함없는 지지 등으로 단순히 어린 것만이 여성 공연예술가의 경쟁력이 아님을 입증했다.

2009년 전후 걸그룹 전성시대 폭발적 인기 끌었던 두 그룹
보이그룹 팬덤 ‘텐미닛 사건’ 등 열렬한 사랑 뒤에 맹렬한 미움


열렬히 사랑받는 걸그룹은 그만큼 맹렬하게 미움받았다. ‘어리고 예쁜’ 여성에 대한 집단 공격은 집요했다(물론 지금은 덜하다는 뜻은 아니다). 남성들의 폭력적인 성적 대상화, 언론의 무례한 소비만큼이나 여성들의 멸시와 조롱도 만만찮았다.

‘곰인 척하는 여우인 척하는 곰’이라며 특정 멤버의 이름에 ‘○○녀’라는 이름을 붙여 라벨링하거나, 얼굴이나 몸매, 메이크업 등을 샅샅이 분석하고 까는 행위는 여초 커뮤니티의 인기 스포츠였다. ‘드림 콘서트’에서 보이그룹의 팬덤이 소녀시대의 무대 순서 때 응원봉의 불을 끈 ‘텐미닛’ 사건은 유구한 계보인 ‘보이그룹 팬들의 걸그룹 괴롭힘’ 중 대표적 사례이다. 소녀시대의 컴백을 바라보는 가슴이 아무리 벅찬들, 이 명백한 사실을 없었던 것처럼 지울 순 없다.

데뷔 15주년을 맞은 소녀시대,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 크게보기

데뷔 15주년을 맞은 소녀시대,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소녀시대에 대한 감정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계기 중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와 2016년 이화여대 학내 시위를 빼놓을 수 없다. 당시 경찰과 대치하던 학생들이 두려움을 이기고자 함께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면서, 그 장면은 새로운 세대의 감수성과 정치적 개성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널리 회자되었다. 소녀시대라는 그룹과 노래를 페미니즘적으로 재해석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오랫동안 걸그룹이란 사회가 요구하는 혹은 이상화하는 여성상을 그대로 재현하고 실천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여겨졌다.

여성들에게는 ‘이렇게 되어야 한다’라는 해로운 영향을 끼치고, 남성들에게는 ‘볼거리’로 바쳐지는 대상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었다. 그러나 소녀시대가 오래 활동하고, 연차가 쌓이고, 각각의 능력치가 업계에서의 관록과 경험치와 만나 시너지를 발휘하면서 이들의 주체성이나 역량이 재평가되었다. 또한 페미니즘의 대중화를 통해 걸그룹이 당하는 여성혐오나 공격이 현실의 여성혐오와 어떻게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지 대중이 실감하면서, 당사자의 고충과 분투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카라는 2007년 3월29일, DSP미디어(현 RBW)에서 데뷔했다. 초기에는 팀이 잘 알려지지 않아 멤버 한승연이 ‘소녀 가장’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혼자서 고군분투했고, 멤버 교체가 있었다. 이후로 인지도를 높이고, ‘미스터’의 엉덩이춤이 엄청나게 히트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예능감 역시 뛰어나서, 독보적인 여신 캐릭터를 밀었던 박규리는 ‘동년배’들에게 마치 사자성어 게임처럼 ‘규리!’라는 말을 들으면 ‘여신!’이라고 자동반사적으로 대답하는 감각을 심어주었다. 여러 걸그룹 중 가장 힘센 멤버를 뽑는 <달콤한 걸>(MBC, 2009)에 출연한 구하라는 뛰어난 운동신경을 뽐내면서 ‘구사인볼트’라는 별명을 얻으며 화제를 뿌렸고, 이는 <아이돌 육상 선수권 대회>(이하 아육대)라는 고정 프로그램으로 이어졌다. 강지영과 니콜이 카라를 탈퇴하고, 새로 영입된 허영지 또한 데뷔와 동시에 예능을 접수했다. 정상급 걸그룹에 새로 합류한 신인 영지를 카라 멤버들이 살뜰하게 챙기는 모습도 신선한 재미였다(허영지가 새로 들어왔을 당시 카라는 아육대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연차였는데, 영지는 모든 것이 처음이라며 함께 나갔던 일화는 유명하다).

카라 역시 소녀시대처럼 무차별적인 괴롭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라디오 스타>(MBC)에 출연했던 강지영이 갑작스러운 애교 요구를 거부하다가 울음을 터뜨린 일은 두고두고 비난받았다. 일본에서의 활동을 가져와 비교하며 한국을 무시한다느니 매국노라느니 공격하는 악의는 도를 넘었다. 얼굴 앞에서 성형 여부를 질문받거나, 데뷔 전의 사생활을 퍼뜨리거나, 함께 출연한 남자아이들에게 친근하게 대하는 모습이 캡처되어 여기저기 퍼날라졌다. 2019년에는 솔로 활동을 이어가던 멤버 구하라가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는 여성에 대한 폭력과, 걸그룹으로 상징되는 어린 여성을 가십으로 소비하는 악질적인 관행과도 유관한 사건이었기에 큰 안타까움을 남겼다.

오랜 활동기간 쌓은 내공·능력치 뿌리깊은 편견을 환호로 바꿔놓아
여성 공연예술가에 가혹했던 세계 조금이라도 더 친절해지기를


7년차 징크스에서 잠시 주춤한 카라는 허영지를 제외한 멤버들이 재계약을 포기하면서 사실상 해체라고 할 수 있는 긴 공백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박규리는 카라의 컴백 가능성을 열어두었으며 2022년 11월29일, 7년 만에 카라가 돌아왔다. ‘마침내’. 일본 교세라 돔 오사카에서 열린 2022년 마마 어워즈에서 신곡 무대를 최초 공개한 것이다. 한국 여성 아티스트 최초로 단독 도쿄 돔 공연을 개최했던 카라의 이름에 걸맞은 컴백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팬들을 보며 진심으로 기뻐하고, 구하라를 그리워하고 애틋해하는 모습이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내공이 다른 무대와 실력만큼이나 반가웠던 것은 여전한 예능감이다. 음악방송에서 카라가 오래가는 비결을 묻는 질문에, 박규리는 “우정과 사랑으로 다져진 팀워크인 것 같고, 계속 오래 활동하고 싶으면 결혼을 늦게 해야 한다”고 재치 있게 답변했다.

데뷔 15주년을 맞은 카라. RBW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 크게보기

데뷔 15주년을 맞은 카라. RBW엔터테인먼트 제공

소녀시대와 카라의 컴백에서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는 걸그룹을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이다. 이들을 ‘그저 예쁘고 어리기만 한’ 소녀 집단이 아니라(사실 이게 왜 비난할 거리가 되는지도 모르겠지만), 주체적인 공연문화예술 전문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멤버 개개인의 능력이나 팀워크에 초점을 맞추기도 하고, 대선배로서 느끼는 격세지감을 재미있어 하기도 한다. 이러한 분위기는 ‘연반인’ 재재가 진행하는 SBS 웹 예능 <문명특급>의 공로가 크다. 재재와 <문명특급> 팀은 언제나 ‘을’일 수밖에 없는 아이돌의 직업적 특성을 알아보고, 여기서 파생된 문제의식과 성찰을 자신들이 제작하는 프로그램에 반영했다. 재재가 소녀시대 팬이라는 사실은 꽤 상징적이다.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는 경험은 같은 상황에 부닥친 다른 존재를 배려하고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장하기도 하는 것이다.

📌[플랫]‘존재 자체가 신문물’, 이은재·홍민지PD가 이끄는 ‘문명특급’ 이야기

소녀시대와 카라는 가부장적인 욕망과 기획자가 의기투합하여, 어린 여성에게 바라는 이상을 투영한 그룹이다. 동시에 그들의 성과는 여성 멤버들의 능력과 노력, 협업, 그리고 팬들의 지지가 이뤄낸 것이기도 하다. 존재는 이렇게나 다층적이고 입체적이다. 소녀시대의 써니는 카라가 컴백하자 인스타그램에 “카라짱”이라는 글을 올리며 “너무 예쁘고 멋있고 빛나고 반갑고 존경스럽고 대견하고 고맙고 그리웠다”며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만만찮은 시간을 통과한 두 그룹의 활동 서사에는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는, 뭉클하고도 쌉쌀한 것들이 녹아 있다. 모쪼록 소녀시대와 카라가, 그리고 많은 여성 공연예술가들이 무탈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활동해주길 바란다. 가혹한 세계가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친절해지기를, 우리가 반짝이는 여성을 다정하게 사랑하는 법을 충분히 배울 수 있기를, 어떤 여성이든 부당한 비난에 걸려 넘어지지 않기를.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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