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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어쩌면 지난해, 플랫 입주자님들을 가장 화나게 한 말 중 하나가 아닐까요. 여성에게 여전히 ‘유리천장’ ‘유리벽’ 현실이 공고함에도 이 말은 ‘노동의 구조적 불평등’을 전면으로 부정합니다. 또 모든 차별의 결과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무책임한 말이기도 합니다.

지난 3월 8일 여성의 날에 공개한 인터랙티브 <뽑아버려요 차별의 조각>은 <27년 꼴찌, 성별임금격차> 기획의 한 파트로 구성되었습니다.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매우 커서 OECD에 가입한 원년인 1996년부터 27년째 ‘꼴찌’입니다. 2021년 기준 성별임금격차는 31.1%로 남성이 100만원을 받을 때 여성은 68만9000원을 받는데요. 경향신문 특별취재팀은 성별임금격차의 원인을 데이터를 통해 분석하고, 여성 노동자들을 만나 우리 사회의 성차별적 노동 현실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플랫팀은 여기에 더해 ‘회사 내부의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했습니다. 여성 직원에게 업무와 관계없는 허드렛일을 시키는 회사, 외모 품평을 하는 상사 등 너무나 익숙해서 드러나지 않는 ‘차별’을 찾고 싶었습니다.

📌[인터랙티브]뽑아버려요 차별의 조각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노동절 ‘우리가 모은 차별의 조각’을 공개합니다 [플랫]

지난 2개월간 플랫의 취지에 공감해주신 202명의 입주자님이 <차별의 조각> 설문에 응답해주셨습니다. 시간을 내어 설문에 참여해주신 입주자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설문 결과 ‘차별의 조각’은 모두 ‘1422개’가 모였습니다(우리 사회에 ‘구조적 성차별’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차별의 조각은 ‘0개’였겠죠?). 설문에 참여한 응답자 1명당 평균 7.11개의 차별의 조각을 모은 셈입니다. 가장 많이 경험한 차별의 상황(구직자의 성별을 명시하거나 제한, 우대한 채용공고를 본 적이 있다)은 91개, 가장 적게 경험한 상황(나는 임신, 결혼, 출산 등을 이유로 퇴직 권고를 받은 경험이 있다)은 5개였습니다.

입주자님이 뽑아주신 ‘차별의 조각’을 공개합니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노동절 ‘우리가 모은 차별의 조각’을 공개합니다 [플랫]

가장 많이 모인 차별의 조각은 ‘구직자의 성별을 명시하거나 제한·우대한 채용공고를 본 적이 있다’는 항목이었습니다.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91명이 ‘그렇다’고 답해주셨어요.

사실 플랫팀은 답변 수가 적을 것으로 예상한 항목이어서 놀랐습니다. ‘구직자의 성별을 명시하거나 제한·우대한 채용공고’ ‘성별에 따라 고용 형태에 차이를 둔 채용공고’ ‘구직자의 용모, 키·체중 등 신체적 조건을 요구하는 지원서’ 등은 모두「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이제 보기 힘든 차별이 아닌가 생각했거든요.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노동절 ‘우리가 모은 차별의 조각’을 공개합니다 [플랫]

남녀고용평등법은 사업주가 노동자를 모집·채용할 때 성별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구직자를 모집하거나 채용할 때 ‘연구직(남성)’ ‘경리(여성)’등 성별 조건을 달거나, ‘남성 환영’ ‘여성 우대’ 등의 우대사항을 명시하는 공고, 특정 성별을 지칭한 것은 아니지만 ‘이모님’ ‘세일즈맨’등 성별을 예상할 수 있는 공고, 직종별로 남녀를 분리 모집하거나 모집인원 수를 다르게 하는 공고는 모집·채용상의 차별에 해당합니다. ‘키 175cm이상’ ‘몸무게 60kg 이하’ 등 직무 수행과 관계없는 신체적 조건, 혼인 여부 등의 조건도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회사 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마주하게 되는 채용상의 ‘차별’은 이것 뿐일까요? 취재팀은 이제는 ‘차별이 없을’ 것으로 여겨지는 신입 채용에서부터 얼마나 공정한지 들여다보고자 했습니다. 2019~2022년 4년간 350개 공공기관 채용 결과를 분석해보니 면접자 수에서부터 남성이 여성보다 1만8000여명 더 많았고 채용 결과도 남성이 여성보다 6814명 더 뽑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019~2022 공공기관 면접·채용 성비 데이터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노동절 ‘우리가 모은 차별의 조각’을 공개합니다 [플랫]

그외 답변에는 ‘직장문화와 성별고정관념’에 관련된 항목이 많았습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은 원치않은 배려(62명 응답)’, ‘성 고정관념에 근거한 여성의 역할 요구(59명 응답)’ ‘성차별적 호칭으로 부름(55명 응답)’ ‘옷차림 외모에 대한 지적(55명 응답)’ 등입니다.

‘직장문화와 성별고정관념’은 주관식으로 답변을 받은 ‘성별임금격차가 좁혀지지 않는 이유’에서도 가장 많이 언급된 주제였습니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노동절 ‘우리가 모은 차별의 조각’을 공개합니다 [플랫]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노동절 ‘우리가 모은 차별의 조각’을 공개합니다 [플랫]

주관식 답변을 받은 ‘성별임금격차가 좁혀지지 않는 이유’에서 ‘직장문화’와 ‘성별고정관념’에 이어 두번째로 많이 언급된 주제는 ‘경력단절’ 입니다. “육아, 가정돌봄으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 “여성의 출산 육아등을 이유로 퇴직이 많아 여성에 고위직이 없는 것” “엄마만의 희생을 강요하는 그릇된 성 역할론”등 플랫 입주자님은 출산, 육아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이 성별임금격차와 관계가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취재팀도 이 점을 짚었습니다. ‘30대 여성 고용률 추락 부르는 ‘경력단절’, 한국이 최악’ 기사에 포함된 그래프를 공유합니다.

OECD에 가입한 38개국의 연령별 고용률 그래프입니다. 대부분의 OECD 국가 여성 고용률은 20대부터 40대까지 계속 상승하다 50대 이후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한국만 30대에 크게 하락했다가 40대에 다시 상승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25~29세 70.9%이던 한국의 여성 고용률은 35~39세가 되면 57.5%까지 13.4%포인트나 급락합니다. 한국만큼 30대 여성 고용률이 급락하는 곳은 찾기 어렵습니다. 데이터가 그래프가 된 순간, 문제는 더욱 명확해졌습니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노동절 ‘우리가 모은 차별의 조각’을 공개합니다 [플랫]

돌봄과 육아에 대한 국가적 인프라가 부족하고 노동시간이 긴 데다, 돌봄과 육아를 여성의 일로 규정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30대 여성 고용률에 직격탄이 됩니다.

입주자님들이 답변해주신 ‘성별임금격차가 좁혀지지 않는 이유’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27년 꼴찌, 성별임금격차> 기획의 내용과 겹쳐집니다.

그동안 한국의 성별임금격차에 대해서 남녀가 종사하는 직무가 다르고 여성의 경력단절로 임금 차이가 난다는 분석이 주를 이뤘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직무, 직종, 사업장이 같은 경우의 성별임금격차도 주요국 최상위권입니다. 여전히 성별임금격차의 구조적 원인은 안갯속에 있습니다. 취재팀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성별임금격차의 원인을 분석하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공공기관 ‘채용’에선 남성 직원 비율이 높을수록, 관리자 중 남성이 많을수록, 평균 임금이 높은 기관일수록, 직원의 근속연수가 긴 기관일수록 여성보다는 남성을 뽑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7년꼴찌, 성별임금격차] ‘남성 관리자 심은 곳에 남성 신입 난다’

📌[27년 꼴찌, 성별임금격차]여성에게 ‘여성다운’ 업무?…보직차별이 승진차별로 이어진다

취재팀은 여성이 저임금 일자리에 몰려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짚어봤습니다. 여성들이 많이 몰려 있으면서 저임금에 시달리는 콜센터 상담사, 방과후 초등돌봄전담사, 학교 청소노동자들을 만났는데요. 복잡한 건강보험 규정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는 가입자들에게 전화 상담을 해주고, 방과 후 초등학생들의 생활과 학습을 지도하고, 학생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학교를 청소하는 일이지만 손에 쥐는 기본급은 100여만원, 월급은 200만원 언저리였습니다. ‘숙련’이 필요한 일들이지만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최저임금에 맞춰진 기본급은 신입이나 10년 이상 된 숙련 노동자나 동일합니다. 코로나 19사태를 지나면서 ‘필수 노동자’로 호명됐지만 여전히 저평가된 노동자들 중 대표적인 직군입니다.

📌[27년 꼴찌, 성별임금격차]‘쉽고 뻔한, 여자가 하는 일’···편견으로 책정된 임금

취재팀은 이 기획에서 ‘고임금 업종에서 여성을 찾기 힘든 이유’ ‘기업이 여성 고용에 적극적일 이유가 없는 제도의 문제’ 등도 담았습니다.

입주자님이 뽑아주신 차별의 조각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뽑아버려요, 차별의 조각>의 40개 문항 중 ‘그렇다’ 라는 답변이 없는 문항은 단 한개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채용, 배치, 교육, 승진 등 고용상 모든 과정에서 성차별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전반적인 ‘여성의 노동권 확대’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는 시민권 확보, 경제적 자립의 기초다. 여성이 경제력을 가질 때 가정, 회사, 그리고 사회에서 남성과 동등한 권력에 접근하고 교섭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성별임금격차 해소가 중요하다”(전윤정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는 말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플랫팀은 입주자님들이 모아주신 1422개의 차별의 조각이 없어지는 날을 기대합니다. ‘성별임금격차’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다시 한번 <27년 꼴찌, 성별임금격차> 기획을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플랫팀과 같은 방향을 바라봐 주시는 입주자님께 항상 감사합니다.

📌27년 꼴찌, 성별임금격차 기획 보러가기

(https://www.khan.co.kr/series/articles/as361)

▼ 이아름 기자 areumlee@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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